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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월3일] 루터 파문

1521년 1월3일, 교황 레오 10세가 마틴 루터를 파문한다. 종교가 유럽을 지배하고 국왕까지 폐위하던 시절, 파문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발단은 루터가 1517년 발표한 ‘95개조 반박문’. 카톨릭교회의 관습이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비판이 주내용이다. 루터의 반박문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자인쇄기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퍼졌다. 사태가 확산되자 ‘술 취한 독일인의 주정’ 정도로 치부하던 교회는 파문 결정을 내렸다. 루터는 ‘오 주여! 멧돼지 한마리가 당신의 포도원에 침입하였나이다’로 시작되는 교황의 파문교서를 불태우며 정면으로 맞섰다. 종교개혁이 시작된 순간이다. 종교개혁운동은 루터를 지나 츠빙글리와 칼뱅을 거치며 루터의 직업소명설과 정당한 방법의 의한 사유재산 옹호 논리를 발전한다. 죄악시되던 부의 축적이 정당화하자 부르주아 계급도 힘을 얻는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아(發芽)다. 칼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비판한 독일의 사회철학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루터를 근대 서구자본주의 문화의 창시자로 평가했다. 루터가 없었다면 오늘날 독일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총’을 주창한 루터가 택한 종교개혁의 대중적 실천전략이 라틴어 성경의 독일어 번역이었기 때문이다. 수백 개의 작은 나라로 갈라지고 훗날 30년 전쟁까지 겪으며 폐허가 된 독일이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한 데는 활자로 인쇄된 독일어 성서본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종교개혁은 민주주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황과 황제에 대한 제후의 저항권을 인정한 루터의 사상이 칼뱅에 이르러 의회의 저항권 사상으로 이어져 종국에는 시민민주주의를 낳았다. /권홍우ㆍ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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