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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30> ‘간신’ 판별법


얼마 전 영화 <간신>을 봤습니다. 사극으로 된 작품 중 가장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그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기자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인간 연산군과 그 주변의 간악한 신하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최근 2005년 당시 화제작이었던 ‘왕의 남자’ 이래로 연산군의 이미지는 다소 로맨틱한 구석이 있습니다. 똑똑하지만 미쳐갈 수 밖에 없었던 예술가 군주처럼 말이죠. 그런데 <간신>에서는 연산이 벌여 왔던 폭군으로서의 행각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그가 광인이 되어가도록 충동질했던 간악한 신하들의 눈을 빌어서 말입니다. 주인공 임숭재(주지훈 분)는 유명한 권신 임사홍(천호진 분)의 아들입니다. 걸핏하면 선비와 재상들을 숙청하기 바빴던 연산군의 폭정 이면에 두 부자의 사주가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임숭재는 게다가 임금의 궁궐을 수시로 드나들고 창덕궁 주변에 자신의 집을 지어 음탕한 행각을 즐겼다는 기록까지 전해져 옵니다. 군주와 신하가 함께 미친 것이죠.

흥청망청이라는 표현도 임숭재에게서 비롯됐습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임금의 시중을 들 미녀를 골라 대궐에 보내는 것을 가리켜 ‘흥청’(興淸)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연산군은 나라가 망하도록 즐기며 하루를 탕진했으니 그야말로 흥청망청이었던 것이지요. 심지어 임숭재는 1만명의 미녀를 바쳐 임금의 음행을 ‘돕는’ 역할을 하겠다고 자임합니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폭군의 배후로 말미암아 얻게 된 부와 권세를 마음껏 누리는 간신의 역할을 맡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자는 쳐내고, 임금이 좋아할 만한 것은 과감하게 빼앗아 바치면서 말이죠. 그런데 영화 속에서 인상 깊은 대사가 나옵니다. ‘내가 점점 멍청하게 만들고 있는 이가 누구냐.’ ‘과인의 조정에는 충견은 있으나 충신은 없다.’ 간신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충견처럼 부리던 외로운 폭군 연산의 독백입니다. 고대 로마의 네로 황제 저리 가라 할만한 암군의 모습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연산의 총희로 유명한 장녹수조차 그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여인들을 동원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장녹수와 임사홍, 임숭재 부자 간의 대결로 인해 연산 정권이 뿌리부터 썩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도와 행각에 차이는 있다 할지라도 현대 조직 역시 간신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20~30대 직원들은 그 이상의 상급 관리자들과 같은 카페를 이용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끼리 즐기는 회사 뒷담화를 윗사람이 들을까 두려워하는 것이죠. 윗사람들 역시 ‘아랫사람’들의 공간을 즐기지 않습니다. 눈치가 있는 이라면 자기가 그 틈을 파고든다는 체신머리 손상될만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종 조직 안에서 자기만의 개인행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랫사람들이 함께 나눈 뒷담화를 고스란히 윗사람에게 갖다 바치는 ‘간신’들 말입니다. 그리고는 구조적인 모순에서 오는 불만, 반성해야 할 조직 문화 등을 의사결정자가 직시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때에 따라서는 아랫사람들이 ‘당신의 천하를 방해하고 있다’고 오도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따지고 보면 사내정치라는 것, 참 구차합니다. 그런데 이런 간신들을 애용하다가는 의사결정자도 날벼락 맞기 십상입니다. 요즘 다면평가제가 정착되면서 ‘실적이 없는’ 부서장은 종종 부하들의 평판에 의해 목이 잘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면서 아랫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피부로 느끼는 게 건강한 관리자의 지름길입니다. 간신만 옆에 두고 달콤한 말에 취해 버리면, 진짜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 것조차 알 수 없습니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데 너무 단 것만 찾고 있지는 않았나 스스로 성찰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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