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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시프트] <2부> ⑤(끝) 위협받는 문화공존

"동반자서 밥그릇 경쟁자로"… 다문화주의 곳곳서 흔들<br>불황, 이민자 탓으로 돌려… 인종주의 다시 고개<br>정치권 반외국인정책 표명 등 유럽 곳곳서 극우주의 맹위<br>美도 이민법 개정안 발의… 국가 정체성마저 뒤흔들어 지구촌 문화갈등시대 예고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

지난해 영국·독일·프랑스 정상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목소리로 다문화정책 실패를 선언했다. 문화공존의 모범으로 거론됐던 유럽 대륙에서 잇따라 다문화주의 실패 선언이 터져 나오자 다문화주의 위기론은 급격히 확산됐다.

다문화주의는 지난 1970년대 미국에서 종교·언어 소수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논의된 후 유럽으로 뻗어나가며 주류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미국·유럽·호주 등 선진국의 경제성장 동력으로 지목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각국 지도부마저 선거를 앞두고 극우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다문화주의 모델을 고수하는 데 주저하면서 다문화주의는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 외교학술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세계경제 불황으로 인종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1930년대 이후 다시 문화갈등의 시대(era of cultural conflict)가 도래할 것"이라며 다문화주의가 중대 기로에 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팍팍한 삶, 위협받는 문화공존=다문화주의가 지구촌 곳곳에서 위기론에 시달리는 것은 경제난 때문이다. 유럽은 그동안 국민 세금으로 이민자들을 지원한 뒤 저임금 제조업에 그들을 투입해 경제성장을 도모해왔다. 하지만 재정위기에 경제성장마저 둔화되자 이민자들을 자국민과 동등하게 지원하는 데 대한 유럽인들의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 이제 유럽인들에게 이민자들은 보듬어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밥줄을 놓고 싸우는 경쟁자가 돼버린 것이다.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던 미국의 다문화주의가 흔들리는 것도 경제위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이민족에 대한 배타적 의식이 높아졌다. 이에 미 애리조나주 의회는 이민자 2세가 성인이 되면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도록 한 이민법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경제난이 '이민자에게 기반을 둔 국가'라는 미국의 정체성마저 흔들고 있는 셈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민자의 저임금 노동에 힘입어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이 최근 경기침체의 화근을 이민자에게 돌리면서 선진국에서 문화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몸사리기 속 극우주의 부상=이처럼 다문화주의가 경제불황의 여파로 위축되면서 유럽 대륙을 중심으로 반외국인ㆍ반이민을 앞세우는 극우주의자들이 급격히 세를 뻗치고 있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유명한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당수가 반이민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강력한 대선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최근 신나치를 표방하는 극우주의 단체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해 독일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다문화주의의 천국으로 불리던 북유럽에서도 극우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스웨덴ㆍ덴마크ㆍ핀란드에서는 극우정당들이 속속 주류정치판에 진출했으며 지난해 노르웨이에서는 극우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집권 노동당에서 무슬림 이민자를 대거 유입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 76명을 학살하는 테러를 저질렀다.



여기에 유럽 지도부들이 선거를 앞두고 보수 유권자의 표심을 의식해 안이하게 대응하면서 극우세력이 뻗어나갈 수 있도록 앞길을 터주고 있다. 실제로 재선을 노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보수 유권자들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인종차별 발언을 입에 올리는 르펜 후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극우 정치세력이 부상한 것은 외부환경 탓도 있지만 현 유럽 지도부들이 정치적 셈법에 따라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도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다문화주의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문화갈등의 시대 도래=문제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감과 극우주의 부상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유럽과 미국경제가 단시간에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정권교체를 앞둔 신흥국에서도 민족갈등이 불거지고 문화갈등 양상도 전보다 더 복잡해지면서 세계가 장기간 문화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유럽경기가 장기침체에 빠질 경우 유럽인과 이슬람인 간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인이 경기불황 책임을 무슬림에게 돌리고 이슬람인도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유럽 내에서 정치조직화를 모색하면서 문화갈등이 정치투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화갈등 양상이 이전과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유럽에서는 유럽 대 이슬람 구도로 문화갈등이 발생해왔다. 하지만 최근 경기기반이 탄탄한 독일로 스페인ㆍ그리스ㆍ이탈리아인들이 일자리를 구하려기 위해 몰려들면서 남유럽과 북유럽 간 갈등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비단 유럽뿐 아니라 올해 정권교체를 앞둔 주요 신흥국들도 문화갈등의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오는 10월 권력을 물려받는 중국 5세대 지도부는 소수민족독립운동에 강경 대응할 방침이어서 티베트 분리독립운동 및 한족과 소수민족 간 갈등이 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에서도 인종갈등에 뒷짐을 지고 있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슬라브계와 캅카스 등 소수민족 간 분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포린어페어스는 "앞으로 문화갈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문화갈등도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다문화주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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