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출구전략에 대한 우려로 흔들리는 신흥국 중에서도 터키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경상적자와 단기외채 의존도가 신흥국 중 최고 수준에 달할 정도로 경제구조가 취약한 데다 최근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사회가 극도로 불안해지면서, 터키는 지난 1994년 멕시코 외환위기의 전철을 밟을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1994년 당시 만성적 경상적자와 핫머니 유입에 시달리던 멕시코는 빈민층의 반란과 여당 대선후보 암살로 정치적 혼란이 극심해진 와중에 미 연준이 출구전략을 실시하자 곧바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겪었다. 멕시코 경제와 정세에 불안감을 느끼던 외국인 단기자금이 미국의 금리인상을 계기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터키의 현 상황은 외환위기 직전의 멕시코를 연상케 한다. 우선 경상수지 악화로 국가 채무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3년간 터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적자 비율은 연평균 7%대로 신흥국 가운데 최고 수준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도 터키의 경상적자 비율이 7.1%로 인도네시아(2.4%), 인도(3.3%), 남아공(5.8%) 등 다른 신흥국보다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위험한 것은 단기외채 유입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팀 애쉬 스탠더드뱅크 신흥시장부문 대표에 따르면 터키의 1년미만 단기외채는 1,550억달러로, 이달 7일 기준 외환보유고(1,283억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총 외채 중 단기채무의 비중은 27.2%로 다른 신흥국에 비해 높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단기외채 의존도가 높은 터키경제에서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이탈할 경우 외부 요인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훨씬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부터 이어진 터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대규모 자금유출을 부추기고 있다. 휴고 딕슨 로이터통신 칼럼니스트는 "지금까지 투자자들은 터키의 안정성과 유럽연합(EU) 가입추진 등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면서 "이제는 더 이상 터키가 안정된 국가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미 글로벌 자금은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가 불거지자마자 터키에서 대거 이탈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연초대비 20% 가까이 올랐던 이스탄불 증시의 ISE100지수는 이달 들어 지금까지의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한달 동안 1.3%포인트 가까이 상승(국채값 하락)했다. 터키 리라화 가치 역시 지난달 초 달러당 1.79리라선에서 이달 들어 1.88리라대까지 급락해 18개월래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전문가들은 터키가 이 같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소스리서치그룹의 아틸라 예질라다 연구원은 "현 터키 집권당이 반정부 시위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 경제의 '핵겨울'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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