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더위의 고통을 견디며 아낀 전력량은 12일에만도 200만kW에 달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대신 땀범벅으로 계단을 오르고 에어컨 대신 선풍기 한대로 버티며 원자력발전소 2기에서 만들어내는 전기를 모았다. 전국에서 '인간발전소'가 가동한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금모으기운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국민의 저력이 이번에는 절전으로 되살아났다.
불만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냉방기를 끈 어두컴컴한 사무실, 뜨거운 화기 앞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가정집에서는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각종 비리로 원전을 멈춰 서게 하고서는 뾰족한 대책 없이 절전만 읍소하는 전력당국의 무능도 질타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블랙아웃이라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 많은 무명씨들이 고통을 참아냈다.
이번 절전의 기적은 진정성 있는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죄송하다"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말에 냉방을 중단하고 땀으로 샤워한 공공기관 근무자들을 보며 '최악은 막자'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정부가 솔선하고 반성하는 진솔함을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정도 마찬가지다. 정책이 힘을 얻으려면 정부의 솔직하고 겸허한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 대통령이 약속했다고 밀어붙이면 될 일도 안 된다. 복지가 중요하다고, 증세가 필요하다고, 공약이 잘못됐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진지하게 동의를 구하면 외면할 이는 많지 않다. 우리 국민은 관료와 정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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