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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기다림의 미학-이영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대나무 중 최고로 치는 '모죽(毛竹)'은 씨를 뿌리고 5년간은 죽순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정성을 다해 돌봐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5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손가락만 한 죽순이 돋아나기 시작해 하늘을 향해 뻗어 간다. 하루에 70~80㎝씩 쑥쑥 자라기 시작해 6주 무렵에는 30m까지 자라나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정지한 시간처럼 보이는 5년간 모죽은 성장을 멈춘 것일까.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땅을 파봤더니 대나무 뿌리가 땅속 사방으로 10리가 넘도록 뻗어 있었다고 한다. 6주간의 성장을 위해 무려 5년을 은거하며 내실을 다져왔다니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하기야 이렇게 탄탄히 기초를 다졌으니 그 거대한 몸집을 지탱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남보다 빨리 1등이 돼야 하고 경쟁자들에게 앞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된 마당에 기다림은 자칫 나태와 동의어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10년, 20년을 내다보는 비전보다 단기 실적을 높이는 처방에 매달리고 당장 매출을 올리는 반짝 아이디어가 우대받는 풍토에서 장기적 안목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과연 기다림은 무익한 가치일까. 지금까지 만나본 자수성가형 중소기업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집념, 성공에 대한 확신과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토양이다. 자기 분야에 대한 남다른 전문성 역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성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그것은 기다림이요 인내다.



"열심히 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고 항상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요. 그 순간에 주저앉느냐 버텨내느냐가 그다음 단계, 나아가 최종적인 성패를 가늠하는 관건이 됐던 것 같습니다."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받는 한 자동차부품업체 대표의 말이다. 지금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 여러 곳에 제품을 납품할 만큼 자리를 잡았지만 그 역시 창업 후 7~8년은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아 속을 끓였다고 한다. 지지부진한 실적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때 자신을 다잡아준 것은 성공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이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성공한 기업은 없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돼 대박을 터트린 기업이라도 준비에 많은 시간과 땀이 필요했음은 자명한 이치다. 비교적 창업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신생 기업이 자리를 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스티브 잡스를 포함한 수많은 청년들이 창업의 꿈을 키운 곳은 허름한 창고나 차고, 기숙사 한 켠이었으며 인고의 결실을 맛보는 데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렸다.

모든 사물에는 임계점이 있고 변곡점이 존재한다. 직전까지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여기에 도달하면 폭발적으로 비약한다. 모죽이 성장을 위해 5년을 인내하는 것처럼 현재의 어려움을 견뎌낸다면 언젠가는 모죽처럼 쑥쑥 자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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