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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추억 속에 사는 회사채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음식점을 찾았다. 수년 전에는 점심시간에 가도 줄을 서서 먹었던 곳이었건만 지금은 아무 때나 가도 자리가 있을 정도로 한산했다. 같이 간 동행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불친절해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손님이 많이 몰리자 ‘내가 못해도 올 사람은 온다’는 타성에 젖었고 그로 인해 시나브로 손님이 줄어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요즘 회사채 시장에도 손님이 끊겼다. 발행하는 기업은 많은데 사려는 투자자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달 들어 10개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발행 물량 전액을 기관투자가에게 판 곳은 현대위아 단 한 곳뿐이다. 증권사가 나머지 미매각 물량을 인수하지 않았으면 회사 측이 원하는 규모의 자금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업종과 신용도 어느 것도 잘 먹히지 않고 있다. 이전에는 투자 기피 대상이 건설과 조선ㆍ해운 등의 업종과 A급 이하의 기업이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거의 모든 업종, 모든 신용등급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 AA-는 물론 SK에너지와 같은 AA+ 등급의 회사채도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

사실 회사채 시장이 칼바람에 시달리는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9월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은 회사채를 확보하기 위해 돈을 싸들고 돌아다녔고 이 때문에 애초 예정했던 것보다 발행량을 늘리는 기업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회사채 발행 금리는 계속 떨어졌고 만기는 계속 길어졌다. 불과 두 달 전의 모습은 바로 이랬다.



그렇다면 회사채 시장이 갑자기 안 좋아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업계 관계자는 이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눈 높이가 안 맞아.” LIG 기업어음(CP) 사태, 웅진 사태 등을 겪으면서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금이 갔고 금리 추가 인하 기대감까지 낮아지면서 발행 금리가 높아져야 하는데 기업들은 아직도 ‘저금리’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권은 신용과 금리의 거래다. 신용을 잃고 금리가 오르면 시장엔 찬바람이 일 수밖에 없다. 회사채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떨어진 신용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채권 가격을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조정하지 않는 한 꽁꽁 언 회사채 시장을 풀어줄 봄은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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