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달리 궂은 날이 많았다.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 비 오는 날이 잦자 길거리 패션도 변했다. 올해 백화점에 처음으로 등장했던 것이 레인부츠. 날씨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국내외 유명배우등 패셔니스타들이 즐겨 신고 각종 매체를 타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팔린 레인부츠가 총 1만족에 달할 것으로 봤다. 백화점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신발로 월 평균 1억원을 올렸다면 분명 빅히트다. 영국 대표 레인부츠 브랜드인 헌터가 올 2월 이 백화점에서 처음으로 팔리기 시작해 이 같은 좋은 성적을 올렸다. 레인부츠가 짧은 시간에 젊은 여성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단순히 비 올 때 신는 부츠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화려한 색상으로 날씨로 인한 우울한 분위기를 한번에 바꿀 수 있는데다, 자신을 톡톡 튀는 패셔니스타로 연출시키는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편안함과 레인부츠 내피를 부착해 겨울에도 신을 수 있도록 한 점이 패션 욕구를 충분히 일으켰다는 점에서 롯데백화점은 올해 이슈 상품 11걸중 하나로 꼽았다. 소비자들은 흔히 럭비공으로 표현된다. 기업들의 개발·마케팅부문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예측·기대하는 방향과는 다른 엉뚱한 곳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소비패턴은 정확한 통계자료와 성향 분석에 자신감을 갖고 덤빈 기업들을 여지없이 낙담하게 만든다. 고가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는 고소득층을 겨냥해 제품을 개발하면 그 신상품을 외면하고 엉뚱하게도 가격은 높지 않지만 기능성을 갖춘 제품에 몰입하기도 하고,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는 중산층이나 청소년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프리미엄 제품에 열광하기도 한다. 이 같은 소비자의 '변덕'을 확실하게 파악해 충족시킬 때 비로소 히트 브랜드가 나온다. 가격·기능·편리성에 '기분을 맞춰주는 배려'도 최고 브랜드의 필수 요소인 셈이다. 기분에 지배되는 것은 남성 소비자도 예외가 아니다. 지수 2,000을 넘나드는 주식시장 활황으로 정작 재미를 본 곳은 백화점 남성의류 매장이다. 불황으로 미뤘던 결혼식을 올리면서 예복수요가 늘어나고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에 신사복 구매가 늘었다. 올 백화점 남성복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10%이상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실상 기분에 움직이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이유는 소비자들이 예전보다 제품과 기술에 대한 정보를 훨씬 많이, 정확하게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마트형 소비자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 기업의 구매 담당자 못지 않은 쇼핑 전문가가 돼 사실상 기업이 의도하는 대로 새로 내놓은 제품에 열광하고 원하는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옛날처럼 쉽지 않은 시대가 왔다는 분석이다. 이들 소비자들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광고 메시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직접 상품정보를 습득하고 꼼꼼히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같은 소비패턴은 기업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기분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업체들에게는 럭비공 같은 구매성향으로 나타날 뿐이다. 숨겨진 보물(treasure)를 찾으러 다니는 것처럼 가격·기능·편리성을 두루 갖추고 소비자를 즐겹게 만드는 제품을 꼭 집어 구매하는 이른바 쇼핑시장의 사냥꾼(treasure hunter)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제품과 구입장소를 찾으러 끊임없이 돌아다닐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이 마케팅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온·오프라인으로 다양한 판매채널을 만들고 소비자들의 합리적 판단과 감성을 노리는 전략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서울경제가 '2010 대한민국 일류브랜드 대상'으로 선정한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데에서 앞으로도 소비 시장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일류 브랜드로 꼽힌 것은 가격이나 기능성에 초점을 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소비 사냥꾼들의 마음을 읽고 빠르게 변하는 소비패턴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