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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예산이 낭비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법률 자문이 필요한 곳에 법률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세금이 불필요하게 새는 거죠. 준법지원인제와 법무담당관제는 그래서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지난 1월 법무부가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하는 상장사 기준을 자산총액 3,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올리면서 준법지원인제가 다시 법조계 쟁점으로 떠올랐다. 준법지원인은 회사의 준법경영 시스템인 준법통제기준을 마련하고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당장 부담이 줄어든 재계는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변호사 단체들의 반발은 거세다. 법무부가 재계의 압박에 밀려 최소한의 기준마저 양보했다며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법무법인 세창의 김현(56ㆍ사법연수원 15기) 대표는 지난 2009~2010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있을 때 준법지원인제 도입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누구보다 불만이 클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김 대표는 오히려 "제도가 잘 안착할 수 있게 기업한테 부담 안 주는 선에서 시작됐다고 본다"며 "시작이 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상장사 전체로 확대시키는 것"이라며 준법지원인 제도의 전면 확대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 대표는 "미국과 유럽 기업은 준법지원인제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도입이 된다면 국내 법률서비스 수준이 한 단계 올라 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법무담당관제와 변호사만 소송을 대리할 수 있는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예를 들어 조세 전문 변호사들 사이에서 국세청과의 소송은 '어린애 팔 비틀기'라고 불린다"며 "국체청을 비롯해 대부분 정부 부처의 경우 법률 전문가 부족해 소송에서 지는 사례가 많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법무담당관을 따로 두면 예산이 더 드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일반직 공무원을 소송에 내세워 패소하면 그게 더 예산 낭비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소송 진행시 꼭 변호사를 둬야 하는 이른바 '변호사 강제주의'에 대해서도 "합의부 이상 사건에 한해 법률가가 일반인의 소송을 돕는다면 쏟아져 나오는 로스쿨 졸업생의 고용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 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경쟁 도입, 법률 시장 체질 강화'라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을 보였다. 그는 "자동차 시장이 개방됐지만 현대차는 더 잘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외국 로펌의 국내 진출에 대비해 국내 로펌이 인수합병(M&A)을 추진했던 데 대해서는 회의감을 나타냈다. 그는 "덩치만 키우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결합을 이루는 M&A가 절실하다"며 "합치더라도 정체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20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세창은 해상과 건설 분야에 주력한다는 방침은 지켜갈 계획이다. 김 대표는 세창이 클라이드 앤 코(Clyde&co), DLA 파이퍼 같은 영국 대형 로펌과의 제휴를 통해 해상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선박충돌이나 해양 오염 등의 문제로 불거지는 국내외 선박ㆍ보험회사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세창은 지난 2000년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발생한 '야요이호 보험사기 사건'을 맡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경험이 있다. 김 대표는 "소송은 로펌 규모가 아니라 자기 실력과 열성으로 판가름 난다"고 강조했다.
최근 법조계의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른 '사법 불신'에 대해서는 "특권의식에 젖은 법조계 전체가 반성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재판은 판사가, 기소는 검사가, 변론은 변호인이 하는 것'이라는 타성에 젖어 사법 불신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법조계 전체가 공익보단 사익에 봉사한다'는 오해를 받는다며 지금부터라도 공익 활동에 눈을 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9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주관하는 국민신문고 대상 반부패 분야에서 민사소액사건 변호사단을 도입한 공로 등을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20년 넘게 해상변호사로만 살아왔는데 서울변회 회장을 맡으며 좀 더 큰 틀에서 법조계를 바라볼 수 있었다"며 서울변회 회장 재직 시절을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사무실 한 켠에는 서울변회 회장 당시 썼던 명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김현 대표는 지난 1992년 단신으로 법무법인 세창을 설립했다. 1991년부터 22년째 국토해양부(당시 해양수산부) 법률고문을 맡은 국토해양부 최장수 법률고문이기도 하다. 현재 건설업계의 선진화를 위한 자발적 단체인 '건설산업비전포럼'의 멤버로 활동 중이며 북한 인권단체'탈북자를 걱정하는 변호사들'의 대표이기도 하다. 미술ㆍ오페라 등 예술에도 관심이 많다. 김 대표에게는 두 명의 은사가 있다. 그의 아버지 고 김규동 시인이 그 중 하나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초대 한국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김규동 시인은 김 대표가 판ㆍ검사보다 변호사의 길을 택하도록 조언했다. 아직도 그의 사무실에는 김 시인이 만든 서각화 여러 점이 걸려 있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크다. 두 번째 은사는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이다. 송 소장은 김 대표가 1980년대에 학생 운동 전력 때문에 행정ㆍ사법고시 면접에서 내리 낙방하자 군부 실세들을 찾아 다니며 김 대표의 보증인 역할을 했다. 김 대표는 또 서울대 법대 대학원 시절 송 소장의 해상법 강의를 듣고 해상 전문 변호사의 꿈을 키웠다. ▦1975년 경복고 ▦1980년 서울대 법대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1983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 석사 ▦1984년 미국 코넬대 법학 석사 ▦2001년 런던국제중재재판소(LCIA) 중재인 ▦2007년 국제변호사협회 한국 이사 ▦2009~2011년 제90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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