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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소설가 이문열

진보세력만 민주화 기여 시각은 잘못… 보수 가치 재정립해야





보수·진보 저마다 역할해 지금의 대한민국 이룩

상대방 때려 부수려는 양측 극단주의자가 문제

분배 제대로 안이뤄져 포퓰리즘 공약 판치는것

안철수현상은 실체 아닌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


"우리나라의 발전과정에 진보좌파만 기여했다는 시각은 대단히 잘못됐습니다. 보수와 진보 양측이 함께 저마다의 역할을 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입니다. 이제는 보수의 가치 혹은 보수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규정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 시대의 대표 소설가'이지만 '보수의 아이콘'으로 더욱 유명한 이문열(64ㆍ사진) 작가를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났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악문원은 현대적 개념의 서원(書院)으로 지난 1998년 작가가 사재를 들여 자신의 집 앞에 설립했다. 문학인, 인문학자 지망생의 학습과 토론의 장으로 활용하다 지금은 문인들의 창작 레지던스로 개방하고 있다.

이 작가는 최근 장편 '리투아니아 여인'로 받은 동리문학상 수상 소감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가 공식적인 문학상을 받은 것은 1999년 자서전적 소설 '변경'으로 호암예술상을 수상한 지 13년 만이다.

"당시 수상소감을 통해 이제는 상을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었어요. 이번에 동리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난데없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더군요. (동리문학상이) 젊은 후배들을 격려하라고 주는 상으로 알았거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삼 '나도 소설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리 선생을 기리는 상인 만큼 어떤 이유로든 거절할 자리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이 작가는 '소설가 이문열'이 아니라 보수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적 인물로 인식되면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정치적으로 몰고 갑니다. 증거라면 2004년 17대 대선을 앞둔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에 75일 동안 참여한 일밖에 없어요. 한시적으로 존재한 공천위에서 15명의 위원 중 한 명으로 역할을 했을 뿐인데 움직일 수 없는 정치적 행위가 됐지요. 그렇게 따지면 요즘 문인들은 정치 세게 하던데… (웃음). 그건 괜찮고 내가 한시적으로 한 것은 문제가 되는가 봅니다. 난 그 사람들의 그런 이중적인 잣대를 보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소설가 김동리(1913∼1995) 선생과의 인연은 그에게 각별하다. "문단에 나오기 전까지 선생을 뵌 적이 없었지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애제자였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 나를 댁으로 자주 부르셨고 먼저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한번은 지인을 통해 휘호를 보내주셨는데 누가 봐도 굉장히 힘들게 공들여 쓴 것이더군요."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보수논객'으로 치부되면서 문학적 이데올로기에 얽매일 때마다 동리 선생이 걸어왔던 길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우리나라가 민주화 열풍에 휩싸였던 1987년 당시는 문단이 좌경화된 상황에서 동리 선생 혼자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인간성'을 옹호하면서 외롭게 우파를 지켜냈습니다. 지난 10년간 내가 느꼈던 외로움을 동리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감당하셨던 것 같아 요즘 들어 동리 선생이 자주 생각납니다."

올해 초에는 미국 잡지 '뉴요커'에 작가의 소설 '익명의 섬'이 실렸다. 최근 문단의 화두인 문학한류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문학한류의 시발점으로 성공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래도 음(音ㆍ음악)이나 색(色ㆍ미술)은 번역이 필요 없기 때문에 해외진출이 용이한 반면 글은 정교한 번역이 요구되는 만큼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차기작 구상은 어떨까. 이 작가는 인간이 진지하게 긴장할 수 있는 문학적 길이가 원고지 5,000장 분량이라며 대하소설보다는 장편 시리즈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장편 '변경'의 뒷이야기를 담은 내용이 될 거예요. 길어야 3부작으로 제목을 달리해서 5년 동안 쓸 작정입니다. 1부 정도는 2년 후쯤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선을 며칠 앞둔 만큼 '대표적 보수논객' 이문열이 생각하는 진정한 보수의 정의가 궁금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치민주화에 좌파만 기여했다는 시각은 대단히 잘못됐다며 보수의 가치, 보수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규정짓는 작업이 선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수와 진보를 정치적 대척점에 두고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파악하는 것 같은데 난 그것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인간 세상에 대한 인식태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는 현실세계에 뭔가 잘못됐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고쳐야 발전이라고 인식하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완전한 부정은 아니더라도 부정의 감정을 갖고 새로운 세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지요. 반면 보수의 경우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실세계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해서 이뤄낸 역사적 산물인 만큼 이를 수정하고 보완할 수는 있지만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나는 이들 보수와 진보 양쪽의 극단에 서 있는 자들을 경계하는 겁니다. 서로를 원수처럼 보고 상대방을 때려 부셔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보수가 됐든 진보가 됐든 잘못됐다고 보는 겁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견해는 명료했다. 그는 21세기 들어 재편된 산업구조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자본가가 이윤을 많이 가져갔기 때문에 부의 편중과 양극화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의 편중, 고도화된 금융 시스템 등 산업구조 자체가 훨씬 복잡해지고 있어요. 삼성전자가 돈을 많이 벌지만 이는 이건희 회장 개인이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삼성전자가 돈을 벌 수 있는 특화된 분야를 일찌감치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부분은 노동귀족 문제입니다. 현대자동차가 10년 넘게 신입사원을 못 받는다고 들었어요. 노조가 신입사원 채용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라는데 실제로 현대차 노조원 평균 월급이 9,000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요즘 88만원 세대의 10배가 넘는 엄청난 부를 이들이 독식하는 거잖아요. 이는 분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분배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고 그것이 왜 이렇게 왜곡됐는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포퓰리즘적 정치공약들이 판을 치는 겁니다."

연초 안철수 현상을 '언론의 아바타 만들기'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해 그는 우선 언론의 보도행태를 꼬집었다. "내가 아바타를 이야기하면 어느 매체에서든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의미를 물어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의미를 묻는 매체는 하나도 없더군요(웃음). 언론에 안철수를 아바타로 만드는 역할을 너희가 하고 있다는 말을 해줄 작정이었습니다. 언론들이 '안철수 원장이 어떤 입장을 밝힐 계획'이라고 떠들면 안 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나타나 몇 마디 던지고 사라지고, 이런 것들이 그동안 반복되지 않았습니까. 안철수 현상은 실체가 있다기보다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보수논객으로서 그의 정치적 선택은 무엇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다른 문인들처럼 공식 지지선언이나 지원유세를 할 의사가 없었는지 물었다. "내가 나서는 게 유리한지 그렇지 않은지 전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앞에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문열의 '바람직한 광장 사용법'

정민정기자

민주 광장 변질로 아테네·로마 멸망

SNS·인터넷 점령한 소수 경계하라


그리스의 아고라, 로마의 포럼, 게르만의 민회, 삼한시대의 소도. 고대 민주주의나 국가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광장이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광장 점유자(상주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이 여론호도에 이용되면서 결국 멸망이나 제정을 초래했다. 이문열은 현대판 광장인 SNS나 인터넷 공간도 같은 경로를 밟을 수 있는 만큼 이들을 경계하고 광장 관리자는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으로도 내고 싶어하는 이문열의 '광장의 바람직한 사용법'에 관한 얘기다.

"얼마 전 대선후보 3인의 1차 TV토론이 끝난 후 인터넷에 들어가 댓글을 확인해보니 그 중 80%가 이정희 후보 우세로 나오더군요. 박근혜 후보보다 문재인 후보가 조금 높게 나왔고요. 인터넷 광장이 누구한테 점령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아득해졌습니다."

그는 광장 점유자들이 반드시 우리 시대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광장의 진정한 존재의미인 소통이 인터넷 공간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인터넷이나 SNS를 보면 하루에 한번 이상 인터넷에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부분은 그냥 몇 번씩 접속해 어떤 이야기가 떠도는지 보는 데 그칩니다. 선동의 대상이 되는 셈이지요. 지금은 광장을 점령한 소수가 어떤 사안에 대해 이러저러한 평가를 내리면 나머지는 다수의 의견인 줄 착각하고 그대로 따라가는 형국입니다."

그는 해박한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인터넷 광장이 직접민주주의의 장(場)이었던 고대 광장의 변형된 과오를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테네의 아고라도 처음에는 직접민주주의의 장이었지만 사회규모가 커지면서 갈 데 없는 루저그룹과 광장을 이익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두 그룹이 상주하면서 광장으로서의 존재의미가 변질됐다고 했다. 심지어 투표로 독재의 위험이 있다는 인물을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도편추방제마저 생겨나면서 수많은 인재들이 오히려 적국에 붙어 조국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광장의 변질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하는 이들을 뽑아 정치를 하도록 하는 대의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로마의 공화정 역시 포럼이 초기에는 순기능을 했지만 비슷한 전철을 밟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제정으로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다수로 보이는 주장에 스스로 동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똑같은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진실과 헷갈려서는 안 됩니다. 광장 사용자들이 신중하게 광장을 이용하는 한편 정부 당국이나 해당 인터넷 기업들도 광장을 잘 관리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무산된 인터넷실명제도 국민에게 끼치는 편익을 제대로 따져봐야 합니다."

▦약력

▦1948년 서울 청운동 ▦1965년 경북 안동고 중퇴 ▦1968년 대입 검정고시 합격 ▦1970년 서울대 사범대 국어과 중퇴 ▦1978~1980년 대구매일신문 기자 ▦1979년 동아일보에 중편 당선되며 등단 ▦1993~1996년 세종대 국문과 교수 ▦1998년~ 부악문원 대표 ▦2003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 ▦2006년 버클리대 체류작가 ▦2007~2008년 하버드대 체류작가 ▦2009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주요 작품

'사람의 아들(1979)'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1980)' '그해 겨울(1980)' '어둠의 그늘(1981)' '젊은 날의 초상(1981)' '황제를 위하여(1982)' '금시조(1983)' '레테의 연가(1983)' '영웅시대(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0)' '변경(1998)' '호모 엑세쿠탄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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