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섭게 떨어진 집값 때문에 '날벼락'
인테리어부터 시멘트 등 등 연관산업까지 휘청… 서민 삶 직격탄[심층진단-건설업 불황에 민생도 보릿고개]
박성호기자 junpark@sed.co.kr
거래 실종으로 생계마저 어려워진 수도권 신도시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가 창문 밖 텅 빈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건설업 불황으로 시멘트^가구 등 연관산업은 물론 이사^인테리어^중개업 등 영세업종 종사자의 삶까지 힘겨워지고 있다. /서울경제DB
종합건설업체 수 금융위기때보다 줄고직장 잃은 직원이 만든 설비업체는 늘어주택 거래 감소로 인테리어·중개업소 일감 실종이삿짐업체 종사자는 하루하루가 고비건설경기 활성화 시켜 민생 안정를
국내 대형 건설사의 설비 관련 하청업체를 운영한 김모(55)씨는 얼마 전 부도를 맞았다. 경쟁이 치열해 저가수주로 근근이 버텨왔던 김씨는 발주물량이 급격히 줄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정리했다. 일하던 직원 20여명도 함께 일자리를 잃었다. 지금도 김씨는 채권자들을 피해 숨어 살다시피 하고 있다.
김씨는 "동생이 다니는 건설회사에 다른 하도급업체를 소개시켜주고 소개비를 받아 겨우 살아가고 있다"며 "회사가 무너질 만큼 잘못한 것도 없고 나름 열심히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억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건설업체들의 위기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연관산업과 서민들의 삶도 어려워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 한 곳이 무너질 때마다 협력업체 수백 곳이 도산의 위기에 놓이고 시멘트업계는 물론이고 가구업계, 각종 건자재업계도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특히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되면서 중개업소ㆍ이삿짐센터 등 서민들의 삶도 곤란을 겪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결국 건설업은 실생활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이 분야의 장기불황은 서민들의 삶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며 "현재 시점에서 건설ㆍ주택산업 활성화는 민생안정과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 불황형 구조 심화=건설ㆍ주택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문을 닫는 건설사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8월 말 현재 종합건설업체 수는 1만1,454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난 2008년(1만2,590개)보다 1,136개가 줄었다.
종합건설사가 무너지게 되면 그들의 협력사에 고스란히 피해가 전가된다. 업계에서는 시공능력평가 100위권의 종합건설사 한 곳이 함께 일하는 하도급업체를 200개 안팎으로 보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초 LIG건설ㆍ삼부토건ㆍ동양건설산업 등 3개사가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 신청을 하면서 자금경색 등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전문건설업체가 500개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건설사 한 곳이 무너지게 되면 해당 건설사 직원뿐만 아니라 하도급업체의 직원들까지 거리로 나앉게 되는 셈이다.
반면 전문건설사들의 수는 늘었다. 같은 기간 전문건설업체는 3만7,106개에서 3만8,088개로 982개나 증가했다. 하지만 업황이 좋아서 전문건설사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종합건설업체가 부도나 폐업 등의 이유로 문을 닫게 되면 일부 직원들이 전문건설사나 설비업체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며 "먹고살 게 없으니 설비업체라도 설립해서 살 궁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멘트ㆍ가구 등 연관산업 직격탄=불황이 계속되면서 건설 연관산업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시멘트업계를 비롯한 건자재 업계는 물론이고 가구업계도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가구업계 실적은 처참하다. 매출은 늘었지만 대부분 손실을 보고 있다. E사는 영업손실이 40억9,537만원으로 6개월 만에 적자전환했으며 L사는 36억6,401만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다.
가구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가구업체는 건설사에 공급하는 특판 비중이 높다"며 "주택경기 침체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시멘트업계도 마찬가지. 국내 시멘트 판매량는 5,080만톤(2007년)→5,063만톤(2008년)→4,847만톤(2009년)→4,549만톤(2010년)→4,465만톤(2011년)으로 감소세가 확연하다. 이와 함께 창호ㆍ타일업계 등도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질개선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이다.
◇영세 인테리어ㆍ중개업소도 울상=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사는 윤모(65)씨는 조그만 인테리어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주변이 노후주택가여서 세입자들이 이사를 할 때마다 벽지나 장판을 새로 교체해 넉넉하지는 않지만 생계에는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주택거래가 줄어든 요즘 들어 윤씨는 한 달에 한두 건 정도밖에 일을 하지 못한다. 윤씨는 "보통 99㎡ 빌라를 도배하고 받는 돈이 80만원 정도"라며 "한 달에 한두 건 해서는 인건비ㆍ재료비 빼고 나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주택ㆍ건설업황이 악화되면서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은 서민들이다. 주택거래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전월세난으로 이사 수요까지 확연히 줄면서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하루하루가 '보릿고개'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극심한 거래 감소가 발생한 수도권의 경우 올 3ㆍ4분기 기준 중개업 종사자가 5만1,642명으로 2007년 1ㆍ4분기(5만2,616명) 이후 가장 적었으며 서울 강남3구의 중개업소가 올 8월까지 체결한 계약은 평균 1.14건에 불과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M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문을 열어두고 있을 뿐"이라며 "매매는커녕 전세계약도 드물다"고 울상을 지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