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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오바마의 딜레마, 미국의 딜레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하기도 전에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며 바샤라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공습하려다 외교ㆍ정치적으로 고립되자 의회 승인이라는 도박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자충수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당초 의회의 사전 승인이라는 카드는 오바마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최대 우방국인 영국이 의회 반대로 군사 공조 대열에서 탈락하자 외로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오바마 대통령은 참모들의 단독 공격 조언을 뿌리치고 의회를 끌어들였다. '국민과 의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이라는 포장까지는 좋았는데 그 뒤가 문제였다.

요즘 시리아 사태를 둘러싼 미국 내 불협화음을 보고 있노라면 오바마 행정부에 전략이라는 게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현재 하원 의원 433명 가운데 시리아 공격에 찬성하는 의원은 26명으로 10%도 되지 않는다. 반면 반대 의사를 보였거나 회의적인 의견을 보인 의원은 258명으로 이미 과반수를 넘어섰다. 사실상 의회 통과는 물 건너간 셈이다.

더 뼈아픈 대목은 '오바마의 정책은 그게 무엇이든 반대한다'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 가운데 찬성은 17명에 불과한 반면 반대는 62명에 달했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의회에 진출한 자유주의 성향의 의원들이 지역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탓이다.

전쟁 호소하는 반전 대통령의 모순

오바마 대통령이 사전에 표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2기를 맞아 지나치게 빨리 레임덕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한편 "의회 반대에도 시리아 공격을 감행할 경우 탄핵감"(공화당 소속의 던컨 헌터 캘리포니아 의원)이라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사실 시리아 사태는 미국에 계륵 같은 문제다. 변변한 유전조차 없는 시리아에 개입해 봐야 실익이 없지만 이미 10만명 이상이 죽어나간 내전 사태를 더 이상 방관했다가는 미국의 글로벌 패권이나 국제적 위상에 금이 갈 수 있다. 북한, 이라크 등 다른 위험 국가에도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딜레마는 '정치인 오바마', 그 자체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반전을 내세워 당선된 대통령이 미국의 군 최고사령관이 되자 이유가 어쨌든 지지자들은 배신하고 전쟁을 일으켜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시리아 공습 계획은 인종별ㆍ연령별ㆍ성별 인구구조 변화가 촉발한 미국 유권자들의 바뀐 정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로도 보인다.

현재 미국 사회는 백인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의 비율이 높아지고 여성의 발언권이 높아지면서 경제는 물론 전쟁, 의료, 이민, 낙태 등 전반적인 사회 이슈에서 자유주의적ㆍ진보적인 정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조사에 따르면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70% 이상의 표를 몰아줬던 히시패닉계의 군사개입 반대 비율은 63%로 백인의 58%를 훨씬 웃돈다.

변화된 유권자들, 외교노선 수정 압력

흑인ㆍ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나 젊은층, 독신 여성, 저학력층 등 이들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의 향방을 결정했지만 '전세계 경찰 국가'로서의 미국의 역할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하지만 미국의 파워 엘리트 입장에서 주기적인 무력 시위는 필요악이다. 독점적인 금융자본, 달러라는 기축통화, 민주주의라는 도덕적 가치에다 군사 개입이 결합되지 않는다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면서 역설적으로 군사력 의존도는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시리아 사태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딜레마는 미 정치권이 처한 딜레마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나아가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의 정치적 발언권이 앞으로 더 세질 경우 글로벌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려는 파워 엘리트와의 불협화음은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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