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일하던 회사인 스커더스티븐스앤드클라크에서 종종 일본에 대해 장시간 토론을 하곤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필자에게는 토론 내용이 신기했다. 대부분이 일본의 경제에 대해 낙관적으로 볼 때 스커더의 투자 전문가들은 일본이 장기간 몹시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일본의 쇠퇴를 강하게 예견했던 사람 중에 오랜 친구인 윌리엄 홀저가 있었다. 그는 일본의 변화하지 못하는 국민성과 인구 고령화, 수직적 기업문화, 노동과 자본의 경직성을 들면서 일본의 침체를 단언했다. 반대로 한국에 대해서는 무척 낙관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부지런한 국민성, 역사적으로 많은 외침을 이겨낸 민족, 다음 세대가 자신보다 잘돼야 한다는 문화, 높은 교육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성 등이 일본과 다르다며 한국에 많은 애정을 나타냈다. 실제 그는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의 7%를 한국 주식에 투자했지만 일본 주식에는 1%밖에 투자하지 않았다.
스커더에서 15년간 근무하면서 필자는 그로부터 주식투자에 관한 철학을 배웠고 그는 나에게서 한국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워갔다. 안타깝게도 그는 한국 방문 횟수가 늘면서 한국에 실망감을 표할 때가 많아졌다. 열악한 기업지배구조와 낮은 기업 투명성에 실망했고 결국 한국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예견했다. 그의 한국 투자 비중은 줄었고 결국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게 됐다. 그의 예견대로 일본은 20년 넘는 기간 침체를 경험했다. 장기 침체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금융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전체 투자자금 중 70%가 기업에 투자되지 못하고 은행에 묻혀 있도록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본다.
많은 사람이 한국이 일본을 닮아간다고 한다. 일본처럼 고령화와 인구감소 등으로 한국도 위기에 직면했다고 한다. 물론 경각심을 갖는 것은 좋다. 하지만 단순 비교는 위험하다. 한국은 과거의 일본과 다르다. 당시의 일본은 버블 상태였지만 한국은 몇 년째 부동산 침체가 계속되고 주식시장도 제 걸음을 한 지 오래다. 중국이라는 변수도 있다. 중국은 한국 기업에 자극제 역할을 할 것이고 많은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인구감소와 노령화는 출산율 제고와 함께 여성 인력과 외국인 노동자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아울러 평화통일은 더할 나위 없는 한국의 호재다.
윌리는 안타깝게 1년 전 세상을 등졌다. 그가 살아 있다면 한국에 대해 어떤 진단을 할까.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변화를 두려워 말고 창조적인 사고를 막는 교육시스템을 과감히 바꿔야 하며 노동과 자본은 유연해져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산업으로 빠르게 이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진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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