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신비의 한라산 사라오름

눈꽃 오솔길 오르자 순백의 하늘호수가 펼쳐졌다

구름다리~사라오름전망대까지 상고대·설산 감상하며 뚜벅뚜벅

해발 1,324m에 자리잡은 웅덩이 영화 속의 '겨울왕국' 변신한 듯

사라오름은 직경이 150m쯤 돼 보이는 소(沼) 위에 눈이 쌓여 있고 소의 주위를 둘러싼 숲 위로 내린 눈이 얼어붙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상고대 사이로 보이는 한라산의 모습. 흰 눈을 뒤집어쓴 백록담 근처를 눈보라가 지나가고 있다.

'오름'은 기생화산을 말한다. 한라산 백록담이 주(主) 화산이라면 그 둘레에 생겨나는 작은 규모의 분출구들이 기생화산, 다시 말해 오름인 셈이다. 이 같은 오름들은 제주도 내 모두 386개나 된다. 기자는 이미 제주도 내 존재하는 오름 중 10여개를 섭렵한 바 있다. 오름 순례가 10여개에 그치고 만 것은 어느 오름을 가든지 풍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메마른 탓인지 다른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아부오름에서도 기자는 별반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제주관광공사에서는 사라오름을 추천해줬다. "사라오름은 정말 경치가 좋다"고 하니 한번 속는 셈 치고 올라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5시20분 매운 칼바람을 맞으며 집을 나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해발 1,324m에 위치한 사라오름에 올라갔다 같은 길로 내려오려면 성판악(해발 750m) 매표소에서 늦어도 정오 전에는 등반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제주에 가까워 오자 구름은 하얀 빨래를 뭉쳐놓은 것처럼 빈틈없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비행기는 몇 차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짐작건대 시계가 불량한 탓에 공항 상공을 선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정시간보다 15분이 지나서야 비행기는 활주로에 착륙했다. 서둘러 성판악으로 향했지만 시계는 벌써 오전11시를 가리키고 있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성판악휴게소에서 해장국으로 배를 채우고 생수를 구입했다. 매표소에서 5.2㎞ 떨어진 사라악샘까지 샘물이 없기 때문이다. 대충 준비를 마친 후 주섬주섬 장비를 착용하고 들어선 등산로는 온통 눈밭이었다.

하지만 길은 평탄했다. 눈이 많이 쌓였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 숨이 가쁘지는 않았다. 사라오름 등반을 성판악휴게소에서 시작할 경우 걸어야 하는 거리는 구름다리~삼나무군락지~속밭대피소~사라오름입구~사라오름전망대까지 왕복 12.8㎞에 달한다.



제주도 내에 있는 386개의 오름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사라오름이 일반에 개방된 것은 지난 2010년 가을. 한라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오름 40개 가운데 처음으로 개방돼 화제가 됐다.

성판악에서 등반을 시작한 지 두 시간 동안은 그저 그런 밋밋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하지만 마지막 사라오름전망대까지 가는 길의 막바지 30여분을 남기고부터 오솔길 양옆의 나무들은 얼어붙어 상고대로 변한다.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사라오름 풍광의 예고편인 셈이다. 특히 백록담으로 향하는 등산로에서 사라오름전망대로 좌회전을 하고 난 다음부터 오름까지 가는 길의 모든 나무는 온통 흰색으로 코팅돼 있다.

하지만 기자는 이곳에서 패닉에 빠졌다. 전날 충전을 해서 확인까지 한 후 가지고 간 카메라의 전지가 날이 추워 방전돼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전지가 죽어버린 카메라는 셔터가 눌러지지 않았고 파인더 안의 계기판도 하나둘 기능을 멈추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완전충전 상태였던 전지가 순식간에 바닥나버리고 만 것이다. 겨울 취재를 수없이 다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전지를 꺼내 손바닥 안에 말아쥐고 체온으로 녹인 후 장착을 해보았다. '찰칵' 겨우 한 컷 찍고서 다시 먹통이었다.

아쉬운 대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상고대 사이로 보이는 한라산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흰 눈을 뒤집어쓴 백록담 근처를 눈보라가 지나가는지 정상이 분명히 보이지 않았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버티고 선 설산의 모습은 필설로 형언할 방도가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사라오름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오르막을 600m쯤 오르자 드디어 사라오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직경이 150m쯤 돼 보이는 소(沼) 위에 눈이 쌓여 있고 소 주위를 둘러싼 숲 위로 내린 눈이 얼어붙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그저 그런 웅덩이에 불과하던 오름이 겨울을 맞아 백설공주로 변신한 듯했다. 한참을 구경해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산을 하려고 발을 돌려 100여m쯤 내려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사라오름의 해맑은 모습을 한번 더 망막 안에 아로새겨 놓고 싶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사라오름은 제주도 내 최고의 음택으로 꼽힌다. 그래서 예전에는 조상의 시신을 지게에 짊어지고 이곳까지 오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오름이 명당인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죽은 다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묻혀 발아래를 굽어볼 수 있다면 아닌 게 아니라 이보다 더한 사후의 복록과 호사는 없을 듯싶었다. /제주=글·사진 우현석객원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