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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서 벌어진 해괴한 일에 '황당'
교육 뒷전… 학교발전기금 강요하는 상아탑최고경영자과정 원우회 회원 300만~500만원, 임원은 수천만원 울며 겨자먹기회장·총무 등 대학서 지목… 액수도 사실상 정액 납부사교 모임화 경향도 여전
박윤선기자 sepys@sed.co.kr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지난해 A대학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하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첫 강의를 들으러 갔더니 수강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정해야 할 원우회 회장과 총무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학교발전기금과 장학금으로 쓴다며 회비를 걷었다. 수강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300만~500만원 정도 됐다.
김씨는 "뒤에 알고 보니 원우회장과 총무는 재산이 많은 사람으로 학교가 이미 결정했다"며 "원우회 임원은 수천만원을 내도록 돼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최신 경영기업 등을 전수한다며 이른바 최고경영자과정을 만들어놓고 이를 이용해 학교발전기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반강제적으로 걷어 비난을 받고 있다. 대상은 주로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이지만 공무원∙정치인∙법조인 등 사회 유력 인사들이 포함돼 있어 강의도 강의지만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수강을 하며 이 때문에 분위기에 떠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고 있다.
국내 대학 최고경영자과정 중 수강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B대학은 지난 학기에 6개월 과정으로 70여명의 수강생을 뽑았다. 이들은 수강료와 별도로 대개 1,000만원 정도를 원우회 운영비로 냈다. 원우회장은 이 가운데 1억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내고 나머지 돈은 각종 행사비로 썼다.
지난 학기 과정에 참가한 한 수강생은 "유명 대기업 임원들은 원우회비까지 회사에서 모두 지원해 문제가 없었지만 중소기업 CEO나 다른 사람들은 솔직히 원우회비가 부담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 이 수강생은 "학교가 반강제적으로 학교발전기금 등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유력 인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문제를 삼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교육은 뒷전이고 사교 모임화하는 것도 문제다.
C대학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이수한 중소기업 사장 한모씨는 강의를 들은 기억이 없다. 강의는 대개 일주일에 한 번 저녁 때 2~3시간을 받도록 정해져 있지만 출석 체크는 거의 없다. 한씨가 하는 일은 강의가 끝날 때쯤 미리 약속돼 있는 술집에 가 원우들과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는 게 전부다. 수료증은 정상적으로 나왔다.
인맥 관리를 위해 최고경영자과정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대학은 인맥을 위한 물 관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모 대학의 경우 매출액 30억원 이상 기업 CEO, 대기업에 재직 중인 사람만 입학을 허가한다는 기준을 걸어뒀다.
이 대학의 한 수강생은 "합격자 발표 뒤에 보니 보험이나 영업을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어 이들을 걸러내고 수업을 진행했다"며 "물 관리에 실패한 최고경영자과정을 누가 듣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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