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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관 나는 정, 퇴행하는 금융산업] <하> '보이지 않는 손' 벗어나려면

가격 개입·정피아에 선진화 펑크… "사외이사 출신 비율 정해야"<br>당국 개입 ATM운영 만성적자에 은행들 속앓이<br>정치권 파워게임에 지배구조 흔들… 갈등 되풀이<br>사외이사 민원도 골치…"과도한 관치 근절" 지적


국내 한 시중은행 은행장은 현금인출기(ATM) 수익 지표를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온다. 평균적으로 1대당 150만 원가량 적자가 발생하는데 5,000대가량을 유지하고 있으니 적자 규모를 무시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고객 편의를 무시하고 무작정 줄일 수도 없다. 이 은행장은 "기준금리 인하로 예대마진은 더 떨어질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아무 대책도 못 세우고 적자를 내고 있는 ATM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날 정도"라고 말했다.

ATM의 수익성이 악화한 것은 근본적으로 금융당국의 가격 개입 때문이다. 지난 2011년 미국 월가 시위에서 비롯된 금융권 탐욕 논란 이후 금융당국 주도로 ATM 수수료는 일제히 절반 정도 내리거나 무료로 전환됐다. 금융당국도 최근에는 은행 수수료 등 비이자수익을 늘려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치권 눈치를 보며 수수료 현실화에 좀처럼 손을 못 대고 있다. 금리 인하로 수익성이 점차 떨어지는 은행들은 속앓이만 심해진다.

금융계가 관치 금융 관행 가운데 가장 철폐해야 할 대상으로 꼽는 것이 '가격 개입'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기본적으로 금융이 규제산업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국제적으로 자본 건전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도 맞다고 본다"면서도 "세세한 가격 하나하나에 개입하고 압박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금융 선진화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한 대형 카드사의 고위임원 역시 "가격개입은 지금 당장은 여론의 입맛을 맞출 수 있으나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고 결국 당국에도 부담을 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실제 당국의 가격개입이 가져온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현대자동차와 카드사들이 대립하고 있는 자동차 복합할부도 결국은 금융당국 가격개입이 만들어낸 기형적 상품이다. 금융당국은 2012년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하면서 중소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내리고 대형 가맹점에는 '적격비용' 이하의 수수료율 요구를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협상력을 무기로 1%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는 2% 내외 수준까지 올라갔고 자동차 할부금융에 카드사가 끼어드는 복합할부라는 상품이 이 틈새를 파고들며 고속 성장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결국 시장에 '돌연변이'를 낳았고 제조업체와 금융사의 충돌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가격 개입과 함께 금융계가 뿌리 뽑아야 할 '퇴행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정피아' 인사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임원은 "정피아 인사는 결국 지배구조를 흔들고 인사의 예측성을 떨어뜨리며 회사를 망가지게 한다"고 말했다.



당장 지난해 금융계를 뜨겁게 달궜던 'KB 사태'만 해도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개입과 이에 따른 인사 시스템의 불확실성이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누가 지주 회장이 될지 누가 은행장이 될지 예측할 수 없고 체계적인 승계 프로그램도 없이 그때그때 정치권의 파워 게임에 따라 지배구조가 짜여지다 보니 1인자와 2인자 간의 갈등이 되풀이된다. 이럴 때마다 회사 내부에서도 파벌이 갈라지고 전체적으로 영업력은 악화한다. KB는 윤종규 회장 취임 이후 지배구조 개선 프로그램을 짜는 등 절치부심하고 있으나 여전히 당국의 입김에 휘둘리고 KB의 주요 직책을 놓고 정치권이 입맛을 다시는 풍조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주총 시즌을 맞아 금융회사 곳곳에 침투하는 '정피아' 사외이사들도 금융계의 골칫거리다. 시중은행의 한 감사는 "정피아 사외이사들이 정치권의 민원을 금융회사에 전달하는 창구가 되고 이 과정에서 부실한 여신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임원은 "기본적으로 정치권 인사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금융회사 경영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연임을 위한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금융계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문제만큼은 금융당국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격이나 인사 개입과 같은 나쁜 관치는 버리되 금융시장을 정화하는 좋은 관치 기능의 활용하라는 주문이다. 국내 정치 현실에서 낙하산 인사를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과도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최근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한 우리은행만 해도 신규 사외이사 후보 4명 중 3명이 정치권과 관련된 인물일 정도로 3월 주총 시즌이 낙하산의 계절이 되고 있다.

윤창현 전 금융연구원장은 "당국에서 전체 금융권의 사외이사 현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정치권 인사들의 비중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교수 출신은 얼마, 정치권 출신은 얼마 이런 식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시중에 공개해놓으면 금융회사들도 정치권의 외압을 방어하는 방패막이로 쓸 수 있다. 이것이 금융당국의 또 다른 규제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이 정도는 규제라기 보다는 좋은 관치이고 당국이 나서서 조율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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