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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2월 18일] <1623> 인도인 수병 반란


1946년 2월18일, 인도 봄베이(뭄바이)항. 대영제국 인도 해군의 수병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애초 이유는 처우개선. 2차대전 직후 나빠진 근무환경 개선을 건의하기 위해 선출한 대표단에게조차 형편없는 식사가 나오자 불만이 터졌다. 영국이 직영하던 인도 해군의 최대 함정이 인도인 수병의 수중에 떨어진 후 봉기는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봄베이 항구의 노동자와 학생 30만명이 파업과 동조시위를 벌이고 주요 항구에서 인도인 수병의 함정탈취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봉기 이튿날부터는 구호도 처우개선에서 '영국 제국주의 타도' '독립쟁취'로 바뀌었다. 봉기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힌두교와 이슬람 간 분리논쟁이 한창일 때 발생해 간디가 봉기를 비난하는 와중에도 인도인들은 종교를 떠나 힘을 합쳤다. 함정 78척과 20개 해안기지에서 2만여명의 수병이 참여한 봉기의 결말은 싱거운 항복. 영국군 포병 1개 대대가 항구 근처의 섬을 점령하고 포격을 가하자 봄베이의 반란은 7일 만에 끝났다. 3월 중순까지 산발적인 저항이 이어졌어도 영국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반란을 눌렀다. 영국은 겉으로는 '수병들의 항복과 처벌이 있을 뿐'이라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지만 속으로는 크게 놀랐다.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생각했던 인도인 군대가 제국 붕괴의 위협으로 돌변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영국은 인도를 자치령으로 삼은 뒤 군대를 기반으로 간접 통치하려던 계획을 버렸다. 애틀리 당시 영국 총리의 회고. '인도의 완전독립을 허용한 것은 간디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인도 군대를 계속 장악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애틀리의 말대로라면 인도의 독립은 잘 알려지지도 않은 수병 반란과 시민들의 연대투쟁으로 이뤄졌다. 민초의 조직력이 역사를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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