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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국가흥망 가른다] <1> 페로니즘에 취한 아르헨티나

[창간기획] <br>툭하면 연금 수령액 인상… 나라곳간 거덜나도 "나몰라라"

아르헨티나 정부의 구호복지사업에 참여한 빈민들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각종 시설물에 붙은 불법 광고물을 떼어내고 있다. 아르헨티나 도시빈민들은 정부로부터 다양한 방식의 수당과 보조금을 받고 있다. /사진=이학인특파원


수십조 예산 주무르는 연금관리국, 대통령 재선 위한 선거캠프 방불
학생들에 넷북 300만개 제공등 올 국가예산 29% 복지에 '몰빵'…성장동력 갉아먹는 악순환 불러
지난 7월2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회개발부 청사 건물 앞.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건물 외벽에 사람의 얼굴이 새겨진 초대형 동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군중의 환호 속에 공개된 동판에는 에바 페론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이날 추모행사를 지켜본 이들은 20세기 초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였던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몰락을 초래한 원인이자 중남미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페로니즘'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1940년대 당시 후안 페론 대통령 부인 에바는 서민들에게 즉석에서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노동자들을 위한 인기영합적 정책을 펼쳤다. 당시로서는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지만 페론이 집권한 후 아르헨티나는 나라 금고가 거덜나는 등 경제가 피폐해졌고 그 후유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집권당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민층에게 강하게 남아 있는 그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재집권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는 선거의 해를 맞아 이미 서민들의 표심을 사기 위한 선심성 복지정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 국가예산의 29%인 1,074만페소(27조3,000억원)를 복지에 쏟아붓는다. 여기에는 학생들에게 300만개의 넷북을 나눠주는 '평등한 연결'과 전국 1,300만가구에 디지털TV 셋톱박스를 달아주는'열린 디지털TV'프로젝트도 포함됐다. 주로 서민층을 공략하기 위한 집권당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요즘 선거철을 맞아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아르헨티나 복지의 최고 담당기구인 연금관리국(ANSES)이다. 올해 이 기구가 집행하는 예산만 해도 952억6,800만페소(24조2,450억원)에 이른다. 100년 전 남미 최강대국 아르헨티나의 영광을 간직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가인 코르도바 거리에 자리잡은 ANSES건물에서 만난 산티아고 로시 홍보국장은 "2003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2003~2007)이 집권한 후 연금을 19차례나 인상했고 2009년에는 아예 물가에 연동해 한 해에 두 번 인상하도록 법을 개정했다"며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국민들의 복지에 맞춰져 있다"고 인터뷰 내내 몇 차례씩 강조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2008년 11월 기간산업 국유화와 함께 민간 연금회사를 국영으로 바꾸고 연금기금도 국고로 환수했다.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는 ANSES는 사실상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뛰는 선거운동기구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그의 남편인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도 바로 페로니즘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난립된 수십 개의 정당 대부분이 페로니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페르난도 라보르다(46) 벨그라노대 교수는 "페로니즘은 등장한 지 50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아르헨티나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2008년 지지율이 20%까지 곤두박질치자 연금을 한꺼번에 50% 인상했다. 다양한 수당과 보조금도 신설했다. 검정이라는 의미의 '네그로'로 일컬어지는 비공식 부문 종사자들을 위해 자녀양육수당(최대 1,100페소ㆍ27만9,000원))이 주어지고 저소득가정에도 매월 최대 380페소가 지급된다. 또 무주택가정을 위한 집세보조금(매월 1,200페소ㆍ30만4,800원)도 마련했다. 2009년부터는 연금을 내지 않는 국민들도 최저연금(1,300페소ㆍ33만200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의 선심은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버스 요금은 1.2페소(305원)꼴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지하철도 마찬가지여서 시내구간 요금은 1.3페소(330원), 시외노선은 1.2페소에 불과하다(시외는 서민들이 더 많이 거주한다는 이유로 요금을 낮게 책정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서민들의 생활에 필수적이라는 이유로 전기ㆍ가스ㆍ전철ㆍ버스ㆍ수도 등의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있다. 여기에는 연간 175억달러(18조4,000억원)의 정부 보조금이 들어간다. 그러나 보조금만으로는 현재 시설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러 증설이나 신규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다 보니 산업구조의 생산성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최근 국제곡물 가격 상승 등에 힘입어 외견상으로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지만 인플레이션이나 실물투자 측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정부 지출이 세수를 앞지르는 상황에서 재정부족 사태로 교육이나 의료 등 정작 투자가 필요한 부분에 소홀해져 결국 중장기 성장동력을 갉아먹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라보르다 교수는 "빈곤층은 표를 따지는 정치인들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홈그라운드의 성격을 갖기 마련"이라며 "선거철만 되면 단기간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정치풍토가 기승을 부린다"고 성토했다. 정치권이 눈앞의 성과에만 매달리다 보니 미래 성장을 위한 중장기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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