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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최저임금 인상 신중하게


최저임금법상 2014년도 최저임금 최종 결정시한이 6월27일로 다가왔다. 새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최저임금 결정이다. 노동계에서는 일찍부터 올해는 최저임금을 21.6% 인상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경영계를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두 배 이상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쟁을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517만 자영업자다.

저임금근로자 생활보장은 국가책임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나 일부 서비스업 근로자, 영세 중소기업 근로자와 외국인근로자들이다. 이들을 고용하는 업주도 소상공인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 소상공인들의 고통을 돌아봐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92.4%가 체감경기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고 70.2%는 올해 경영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다 함께 새롭게 시작하자는 희망을 갖고 맞이한 2013년이 적어도 이들에게는 희망이 아닌 셈이다.

오히려 이들이 서 있는 곳은 절망의 벼랑 끝이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자영업자들이 경기침체 속에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의 빈곤률은 상용근로자의 세 배에 달하며 부채 규모도 1.3배에 이른다. 부채가 있는 자영업 가구 10곳 중 7곳이 사실상 빚을 갚기 어려운 상태라고 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폐업 또한 속출하고 있다. 5월 통계청에서는 자영업자 비율이 사상 최저수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세 달 연속 자영업자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4월에만 자영업자 9만명이 줄어들었고 이 가운데 종업원을 둘 정도로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았던 자영업자들이 종업원이 없는 자영업자보다 1만명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 중 절반 이상이 50~60대인 것을 고려하면 퇴직금을 모아 시작한 노후 준비에 실패한 이 사람들의 어려움은 크나큰 사회적 위험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30~59세 남성의 자살률은 이미 지난 10년간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최저임금 현실화를 촉구하면서도 정작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자영업자들의 최저생계 보장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 지불 주체는 최저생계 보장은커녕 빚더미와 폐업, 심지어 자살에 이르는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데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곳곳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지난 13년간 실제로 최저임금은 국민경제생산성의 두 배 가까이 인상됐다. 2000년 이후 평균 국민경제생산성 증가율은 4.6%이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은 8.1%에 달한다. 13년간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생산성 증가율보다 낮았던 적이 없다.

임금상승률과 물가인상률을 보아도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됐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같은 기간 전산업 임금상승률은 4.0%, 물가인상률은 3.0%로 최저임금 인상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영세 자영업자에 떠넘기지 말아야

이렇게 급격한 임금 인상이 계속되면서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이미 170만명에 달하고 있다. 인상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높은 최저임금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프랑스의 최저임금 영향률이 10.6%, 미국은 5.2%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영향률은 무려 14.7%이다. 상대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단신근로자의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위해 국가에서 법으로 강제하는 임금인 최저임금이 온 가족의 생계비와 교육비와 문화생활비까지 포괄하는 적정임금이어야 하는 것처럼 호도돼 매년 떠밀리듯이 인상을 거듭한 결과이다.

저임금근로자의 생활안정은 사회안전망 확충과 복지제도 정비를 통해 국가에서 책임져야 마땅하다. 매년 생활에 불충분하다며 최저임금 고율인상만을 부르짖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사업주에게, 그것도 최저임금 근로자와 다를 바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사업주에게 떠넘기는 꼴이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것은 '희망'이었다. 상자에서 빠져나간 죄악들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어도 인간의 마음 속에 끝까지 희망만은 남아서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자영업자들의 상자에서는 그 희망마저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520만명의 사람들과 그 가족들, 휴일도 근로시간도 없이 일하면서도 최저생계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야말로 최저임금을 선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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