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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정치 후진국 러시아의 문화적 선진성


요즘 러시아에서 들려오는 정치소식을 접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자리를 주고받게 돼 있는 저들의 선거와 북한 김정은의 세습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필자는 국제연극평론가협회의 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에서 가끔 회의를 주재한다. 갈 때마다 거리에는 조폭 문화가 횡행하고 어디에나 있는 군과 경찰의 존재는 행인들을 오히려 불안하게 만든다. 후진정치의 산 증거들이 어느 곳을 보든지 넘친다. 러시아에서 돌아올 때면 다시는 이 곳에 오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일이 자꾸 나를 러시아로 부른다.

지난해 4월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열흘 남짓 방문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새로운 러시아를 체험했던 것이다. 필자가 심사위원으로 봉사하는 유럽연극상의 시상식이 유서 깊은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열렸는데 전형적인 유럽풍의 극장으로 참 인상적이었다. 족히 1,000명 넘게 수용할 것 같은 극장인데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어느 방향에서도 가깝게 느껴져 배우들과 관객들의 소통이 원활할 것 같았다.

드디어 오랜 지연 끝에 시상식이 시작됐다. 첫 순서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연극원의 교수가 나와 수상자들을 소개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수상자에 대한 탄성이 아니었다. 수상자가 앉아 있는, 정확히 말해서 주최 측이 수상자를 앉힌 좌석이 갖고 있는 역사성 때문이었다.

"당신은 지금 100년 전 러시아의 황제가 앉던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당신의 자리는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자신의 첫 연출작품 '갈매기'를 보던 자리지요". "그 자리에서 푸쉬킨이 오페라를 보고는 했지요", "여기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앉아서 연극을 보던 자립니다… ."



7명의 수상자 한 사람 한 사람과 러시아가 자랑하는 예술가들을 연계시키면서 한편으로 수상자를 축하하는 동시에 또 한편 자국의 예술사를 서술하는 이 기획이야말로 본 행사인 유럽연극상 시상식 못지않게 감동적이었다. 러시아가 갖고 있는 문화예술의 역사와 힘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

나는 그 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역사가 분명 어딘가 있을 터인데 그렇게 기획할 만한 안목이 없다. 문화선진국 러시아로부터 우리가 배울 바이다. 나는 이제 설레는 마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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