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0월11일 뉴욕 브루클린음악당. 월가의 그늘을 담은 뮤지컬의 막이 올랐다. 제목하여 ‘약탈자들의 무도회(The Predators' Ball). 약탈자는 누구일까. 월가의 금융천재들이다. 극의 소재는 마이클 밀켄. 1980년대 ‘정크본드 시장의 황제’로 군림하다 내부자거래와 사기 혐의가 드러나 옥살이를 했던 밀켄의 길지 않지만 굴곡진 생애를 담은 소설 ‘약탈자들의 무도회’를 그대로 뮤지컬로 옮겼다. 밀켄은 미국 역사상 개인벌금형 중 최고액인 6억달러를 낸 인물. 1946년생인 그는 30대 중반인 1980년부터 정크본드에 손을 댔다. 신용등급이 떨어져 모두가 기피했지만 밀켄은 고수익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마침 레이건 행정부의 금융규제 완화로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태동하던 시기, 물 만난 고기처럼 밀켄은 큰손들을 끌어들여 순식간에 정크본드 시장을 2,000억달러 규모로 키워냈다. 벤처기업가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섰다. 밀켄은 전성기인 1980년대 중반에만 최소한 10억달러 이상을 성과급으로 챙겼다. 밀켄이 투자자들을 위해 매년 개최한 연찬회의 이름이 바로 ‘약탈자들의 무도회’였다. 영원할 것 같던 밀켄의 질주는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의 대폭락과 함께 끝났다. 사기혐의가 적발돼 1990년 벌금 외에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1년10개월을 지낸 후 보석으로 출감, 요즘도 월가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가 근무했던 드렉셀증권사는 벌금 6억5,000만달러를 낸 뒤 파산했다. 약탈자의 무도회는 끝났을까. 천만에. 밀켄의 후배들은 같은 이름의 파티를 정례적으로 즐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학생들의 초가을 정장 파티 이름이 바로 ‘약탈자들의 무도회’다. 예비 금융천재들은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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