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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베이징 전승기념식 둘러싼 외교전

임종건 언론인

오바마·아베 방중 여부보다 김정은 참석 가능성 더 관심

긴장완화 위해 박근혜 대통령 가야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는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기념식을 둘러싸고 남북한과 미·중·일·러 등 북핵 6자회담 당사국들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 취임 후 최초로 야심차게 준비한 이 행사에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포함한 5개국 국가원수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이 중 참석이 확실한 사람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뿐이고, 나머지는 유동적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월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의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해 러시아 체면을 살려준 시진핑 중국주석에게 답례로라도 가야할 형편이다.

러시아 전승기념행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반발로 서방측 국가원수들이 대부분 불참했고, 유일하게 참석한 서독의 메르켈 총리도 붉은 광장의 열병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10년 전 60주년 행사 때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등 53개국 정상들이 참석했던 것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

러시아 행사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보이콧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다. 중국 행사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일정상 참석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베이징 행사 불참은 러시아 행사 불참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중국 전승절 행사 직후 시 주석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것이다.

러시아 행사를 서방 국가들에 앞장서서 보이콧한 미국이 중국 행사에 다른 서방국들과 함께 참석한다면 러시아에 오래 갈 원한을 사는 일이다. 러시아에 감정 살 일을 피하면서 중국에도 양해할만한 불참 이유가 된 9월의 백악관 미중 정상회담은 미국의 절묘한 외교적 연출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바로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참석 문제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일본 아베 총리의 경우 ‘항일’전승기념식이라는 기념식 이름부터 눈에 거슬리는 데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한 마당이고, 오바마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는 행사에 결코 가고 싶은 심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참이 가져올 역풍이 부담스럽다. 역시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인식을 확인하는 의미가 된다. 시 주석이 아베 총리의 불참에 유감을 가질 경우 풀려가던 중일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일본보다 조금 더 난감한 처지가 한국이다. 지난해 방한 때 시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행사를 두 나라가 같이 주관하자고 제의해 당황케 했었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은 중국 행사에 흔쾌히 참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참석반대론자들은 중공군의 6·25참전을 말하지만 항일전만큼은 국부군이나 중공군이 같이 싸웠다.

박 대통령만 참석할 경우 어렵게 화해의 물꼬를 튼 한일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긴 해도 아베 정부의 자세에 근본적인 반성이 없다는 점에서 크게 개의할 바는 아니다. 미중 관계의 긴밀도로 볼 때 박 대통령의 참석이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다.

박대통령의 입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이나 아베 총리의 참석 여부보다 더 신경이 쓰는 것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참석 문제다. 김정은은 러시아 행사 때도 갈 듯이 하다가 마지막 3일을 남겨 놓고 국내사정을 이유로 불참을 통고했다.

김정은이 모스크바에 가지 않은 것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과 같은 국내 사정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에 못지않게 모스크바에서 부닥칠 시 주석과의 대면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의 냉대에 대한 반발로 소련에 기우는 듯이 보이지만 북러관계는 북중 관계의 종속변수다. 김정은에게 러시아는 결코 중국보다 먼저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가 9월에 베이징에 가기만 한다면 그의 최초의 국제무대 등단도 주목거리지만 6자회담의 파트너들과 갖게 될 상견례만으로도 한반도 및 동북아 긴장완화에 중대한 계기가 된다. 다만 김정은의 국제사회 등단이 시너지를 내려면 핵포기가 전제돼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기대할 상황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9월 방중 역시 불발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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