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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한 몹쓸 습관이 하나쯤 있기 마련입니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바꾸지 못한 후회와 반성에서 비롯된 새로운 각오. 그래서 ‘변화’란 마치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쉽지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으로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나 봅니다. 기업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혁신을 부르짖죠. 매년 사업계획서를 발표할 때마다 ‘바뀌어야 산다’는 신념을 설파하며 다양한 활동을 전개합니다. 이런 이유로 빼놓지 않고 하는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인적 쇄신입니다. ‘조직 역시 고이면 썩는다’며 구성원의 변화로 혁신을 꾀하는 것입니다. 물을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을 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고이지 않고 흐르게 합니다. 잘못된 관습이나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는 등 구조를 바꾸는 일이 이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 새 물을 붓는 것입니다. 외부인사를 영입하거나 부서 이동 등을 통해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죠.
구조 변화보다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훨씬 손쉬워 보입니다. 이 같은 이유로 기업은 도전정신을 필요로 할 때 종종 임원진을 교체하곤 합니다. 이사회의 추대를 받아 최고경영자(CEO) 후보에 오른 인물들을 비교할 때면 추진력, 경험, 평판 등 여러 요소가 거론됩니다. 외부인사냐 내부 승진인사냐도 결코 빠지지 않는 비교 포인트 중 하나죠. 외부 인물일 경우 이종의 경험을 결합해 융합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인식됩니다. 반면 내부 인물의 경우에는 조직문화를 이미 체득한 상태이고 속한 업종의 분위기, 흐름 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 예상됩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수장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촉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홍콩과 미국 학자들은 이러한 믿음에 커다란 오류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데이비드 웽 교수는 1994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컴퓨터 산업을 대상으로 2,000여개의 기업들을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CEO의 나이, 교육 정도, 교체 빈도, 영입 전 전략 방향, 과거 경영진으로서의 경험 등을 변수로 활용해 새 CEO 영입이 해당 기업의 전략과 성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CEO의 임기, 내부인사냐 외부인사냐 등과는 유의미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험적 자산, 사회적 관계, 재직했던 기업에서의 리더십, 전략 추진 경험 등 중요한 것은 CEO가 걸어온 궤적, 즉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결론이라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측정하기 어렵다는 한계점 또한 존재합니다.
언론에서 압축된 후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과정을 생각해봅시다. 뚜렷한 성과가 있지 않는 한 그리고 속속들이 아는 내부 인사가 아닌 이상 개인의 변화 수용 정도, 혁신성 등을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인 매력이 넘친다, 부지런하다 같은 식의 평판일 뿐입니다. 역량이란 게 외부인으로서는 알 수 없을뿐더러 내부적으로도 주관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검증에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적 쇄신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기업의 새로운 리더를 뽑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요. 새 CEO 영입으로 혁신을 기대하기 이전에 ‘지금 우리 회사에 어떤 인물이 필요한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스타급 인사만 영입하면 만사형통이란 공식은 깨진 지 오랩니다. 작은 습관도 고치려면 최소 2주 이상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손 쉬운 혁신’을 기대한다는 게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얘기 아닌가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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