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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매입을 추진하는 것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금융 계열사 전반에 대해서도 '이재용 체제'를 준비하는 상징적 차원이라 볼 수 있다.
금융당국도 차후 삼성 금융 계열사에 대한 경영승계 과정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포석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이번에 소수지분 매입과정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게 되면 나중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상속받는 데 부담이 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지분매입이 중간 금융지주회사 설립과 연계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지만 현재로서는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삼성 금융 계열사에 대해 이 부회장이 확고한 영향력을 선점하려는 행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을 0.1%씩 사들이겠다고 금융당국에 승인을 요청한 것은 약 한 달 전이다. 이 부회장은 올해 6월 말까지 보유하던 삼성자산운용 지분 7.7%를 삼성생명에 넘기고 확보한 현금 252억원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을 각각 0.1%씩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말 현재 삼성생명의 주주구성은 이 회장이 20.76%로 최대주주이며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19.34%), 삼성문화재단(4.68%), 삼성생명공익재단(2.18%) 등으로 돼 있다. 이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 합계는 46.97%다. 삼성화재는 삼성생명(14.98%)을 최대주주로 특수관계인 지분이 18.41% 수준이다. 이 부회장은 이들 금융사에 지분이 전혀 없다. 보험업법상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을 갖게 되면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으로 오르기 때문에 당국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소수지분이라 하더라도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으로 보험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라면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아버지인 이 회장 유고시 삼성생명 최대주주 자리를 차질 없이 이어받기 위해 사전 시동을 건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당국 관계자는 "이번에 대주주 승인 절차를 밟아놓게 되면 차후에 유산을 상속받더라도 추가적인 행정절차를 거치는 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상속 때 이 회장의 지분이 홍라희 여사와 세 자녀로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삼성생명 지분을 꾸준히 사들여야 상속 후 확고한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가 1~2%의 지분 차이로 결정될 수도 있다는 점은 이 부회장의 소수지분 매입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삼성 금융 계열사에서 삼성생명이 가지는 위상을 고려할 때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카드 등 금융 계열사 지분을 대거 보유한 핵심축이어서 그동안 중간 금융지주사 유력 후보로 거론돼왔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에 앞서 이 부회장이 지분매입에 나섰다는 해석도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소수지분 매입은 금융지주사 전환과는 연결고리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의 2대 주주인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25.10%)로 이미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을 확고히 갖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히려 삼성이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포기하고 이 부회장의 지분매입을 통해 이 회장의 최대주주 자리를 확고히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주식 취득과 관련해 29일 금융위 정례회의 안건으로 상정해 심의를 진행한다. 금융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주식취득 적정성과 관련한 필요 요건이 갖춰진 만큼 이견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승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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