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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클릭] 골프 금지령 & 해금령


장마 속에서도 라운딩을 즐기는데 옆길로 장례행렬이 지나갔다. 한 사람이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애도를 표하자 친구가 물었다. ‘고인과 아는 모양이지?’ 답이 기막히다. ‘그래도 와이프의 마지막 길인데 인사는 해야지.’ 누군가 만들어낸 게 분명함직한 이 얘기에는 골프의 중독성이 담겨 있다.

△골프는 맛들이면 헤어나기 힘든 운동이다. 뒤늦게 배운 골프에 빠져 3ㆍ1절 골프로 총리직을 잃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도 있었다. 역사에 ‘골프’라는 단어가 나오는 최초의 기록물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가 1457년 반포한 골프 금지령이다. 명분은 안보. 사람들이 골프에 빠져 숙적 영국과 전쟁에 대비한 궁술 연마를 등한시한다는 이유였다. 금지령은 효과를 거뒀을까. 그 반대다. 금지령은 34년간 세 차례 포고됐지만 1513년 영국을 침공한 스코틀랜드 군대는 궤멸당했다. 영국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일시적인 골프 금지령을 내렸어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한국도 골프 중독과 금지령에 익숙한 나라다. 백두진 국무총리는 대선과 총선 직전인 1971년 2월 고위 공무원의 골프를 금지시켰다. 1960년대에도 일부 부처에서 골프 금족령을 내린 적이 있지만 공무원 전체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시기는 1993년. ‘골프는 너무 재미있는 게 단점’이라던 김영삼 대통령이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게 대통령의 골프 금지령으로 굳어졌다. 이후 역대 정권에서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지지도가 떨어질 때마다 금지령은 단골 메뉴로 나왔다.



△골프는 중독성뿐 아니라 치명적인 인화성도 갖고 있다. 골프를 부유층과 권력층의 고급 유흥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세 좋게 금지령이 발동됐다가 이렇다 할 해금령 없이 공직자들이 슬그머니 클럽을 찾는 게 반복된 것도 같은 이유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금을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대중골프장협회도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점을 들어 같은 내용의 건의서를 냈다. 이번에는 어떤 결말이 날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의 골프 금지령은 여전히 정치 행위의 일부라는 점이다.

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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