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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발리 남북회담 후 한반도 정세


발리 비핵화 회담은 본질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따라 남북이 마지못해 마주 앉은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은 북미협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남쪽과 만나 악수하는 사진이 필요했고 한국 역시 미국의 남북대화 압박에 못 이겨 억지춘향식으로 북한과 사진을 찍은 정도이다. 얼마 전 남북의 비공개 접촉까지 폭로하고 더 이상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도 않겠다는 북한이었기에 발리 ARF 회담장에 갑자기 리용호 부상이 나타난 것은 전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 남북대화에 의지를 가지거나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가진 것이 결코 아니다.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이명박 정부 역시 연초부터 북한의 대화 제의를 계속 거부했고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거쳐 6자회담을 재개한다는 3단계 프로세스마저 천안함 사과 없이는 시작할 수 없다는 소극적 입장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번 발리 회담은 전적으로 미국의 압박과 권유에 의한 것이지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따른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경고성 최후통첩에 따라 내키지는 않지만 발리 남북회담에 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이번 발리 회담이 교착 국면의 북핵 문제에 일정한 청신호를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남북관계 개선이나 남북대화 재개로 연결될 것으로 보는 것은 시기상조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는 발리 남북회담 직후 북미협상이 시작되면서 일단은 추동력을 갖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외무장관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으로 우라늄 농축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입북을 북에 요구했다. 그런데 우라늄 농축 중단은 UEP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야 한다는 기존 주장에서 한발 물러난 것이고 사찰단 입북은 이미 지난해 12월 빌 리처드슨 주지사 방북시 북한이 합의사항으로 제시한 것이다. 김계관의 뉴욕 방문으로 직접적으로 북미 간 합의점을 도출하지는 못하겠지만 본격적인 북미협상을 앞두고 상대방의 요구와 의사를 타진하고 조율하는 예비접촉으로서는 나름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남북관계다. 본래 북핵 문제가 진전되면 그와 연동돼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또 남북관계 진전은 북미협상을 추동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따라서 북핵 협상이 어렵사리 시작된 지금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다시 천안함 사과라는 실현 불가능한 전제 조건에 얽매여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를 놓친다면 향후 북미협상 진전과 6자회담 재개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는 외교적 고립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1994년 김영삼 정부가 북핵 협상에서 소외되고 어깨 너머로만 북미협상을 지켜봐야 했던 외교적 실패를 떠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서 대북 라인 교체를 요구하고 8월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고집과 오기만을 내세워 대북 강경정책을 지속한다면 오랜만에 조성된 대화 분위기는 오히려 남북의 불신만 키우게 될 것이다. 금강산관광 협의제안도 남북이 만나서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북에 대한 우리 측 요구만을 반복하고 올 거라면 무의미하다. 인도적 지원·금강산관광 재개를 지난해 2월 관광재개 실무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고 오히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음을 반추해 봐야 한다. 북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결코 남북대화에 매달리지 않을 심산이다. 그리고 대북정책 변화의 상징적 조치는 바로 인도적 지원과 금강산관광 재개의 결단이다. 경제적 지원이 아쉬워 북한이 발리 회담에 고개 숙이고 나온 것이라고 판단하거나 그래서 조금만 더 압박하고 버티면 북이 결국 굴복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아직도 남북관계는 요원하고 남북대화는 불가능하다. 발리 훈풍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잔뜩 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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