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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보이는 버스 번호판의 불편한 진실

서울 시내버스 가운데 정류장에 도착하면 앞문이 열리면서 노선번호가 툭 튀어나오는 차량을 종종 볼 수 있다. 한 운수회사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보이는 번호판'으로 9개 노선 200여대의 버스에 이달부터 설치됐다.

이 번호판은 여러 버스가 한 정류장에 몰려 들어올 때 뒷차 번호가 보이지 않아 버스 승객들이 번호를 확인하러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불편을 없애자는 발상에서 태어났다. 번호판 덕에 이제는 버스가 줄지어와도 앉은 자리에서 뒷차 번호가 보이니 내가 탈 버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왜 자기 버스가 뒤에 숨어 있지는 않은지 몸을 움직여가며 확인하는 것일까.

다른 이들보다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자칫 내가 탈 버스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인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여러 대의 버스가 왔을 때 뒤에 있는 버스가 정류장 중심까지 다가서지 않고 바로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경험했다는 얘기다.

만약 모든 시내버스가 앞차에 이어 차례차례 움직이면서 의자나 안내판이 있는 정류장 중심까지 온 다음 승객을 다 태우고 떠난다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느긋하게 버스를 기다려도 될 것이다. 또 굳이 버스가 번호판을 돌출시키면서까지 승객을 부를 필요도 없어진다.



보이는 번호판은 겉으로 볼 때 기발한 아이디어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불편한 시내버스 문화를 담고 있는 태어나지 않아도 될 발명품인 셈이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외국에서 이런 돌출 번호판이 나오지 않은 게 생각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서울시가 보이는 번호판을 내놓고 자화자찬하는 모습은 문제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 찾아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가지를 더 잘 쳐내는 기구를 만들었다며 자랑하는 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시내버스 문화가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승객 한 명 한 명마다 인사를 건네는 기사도 여럿 있고 난폭운전도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내가 타야 할 버스에 못 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을 마음에 품고 있다. 많이 좋아졌다고 여유부리기 전에 아직 고쳐지지 않은 점은 어떤 게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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