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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5월21일] 제일은행권


1902년 5월21일. 이 땅에 은행권이 첫선을 보인 날이다. 지폐에 들어간 도안의 주인공은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일본 기업인. 최초의 지폐에 민족의 영웅이나 스승ㆍ명승지 대신 일본인의 초상이 박힌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 제일은행이 찍은 돈이기 때문이다. 당시 제일은행은 일본의 민간은행. 어떻게 민간은행이 남의 나라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을까. 불법과 강권, 무력에 의해서다. 제일은행이 지폐 발행을 추진한 것은 대한제국이 금본위제도 채택과 외국 돈 유통 금지를 골자로 하는 자주적 화폐조례를 발표한 1901년 2월부터. 통용이 금지될 일본 은화 대신 한국에서 사용할 돈을 찍게 해달라는 요청을 우리 정부가 거절하자 제일은행은 일본 대장성으로 달려갔다. 대장성이 제일은행에 내려준 특전은 사실상의 은행권인 ‘무기명식 일람불(一覽拂) 어음’의 발행 허가. 유통지역도 일본이 아니라 한국으로 국한시켰다. 준비금 적립 등의 책임은 지지 않고 한국의 화폐주조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제일은행권이 나오자 청나라 상인들도 비슷한 ‘어음’을 유통시켰다. 정부는 뒤늦게 제일은행권과 청의 어음에 대한 유통금지령을 내렸지만 얼마 안 지나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고 말았다. 군함 3척을 동원한 협박에 굴복한 탓이다. 강제로 준 법정화폐의 지위를 차지했음에도 막상 은행권의 사용량은 크게 늘지 않았다. 민간의 저항 때문이다. 보부상 단체와 인천지역의 배격운동이 특히 강했다. 덕분에 한국은 적어도 러일전쟁 이전까지 화폐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일은행권의 잔재는 오늘날 완전히 사라졌을까. 새로 도입될 고액권의 모델로 친일 논란의 대상인 인물을 넣자는 주장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화폐침략에 맞섰던 조상들이 안다면 뭐라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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