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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업에 맞는 새로운 임금·정년체계를 만드는 것이 지금 해야 할 굉장히 중요한 시대적 과제입니다. 이 숙제를 풀어야 자라나는 세대들의 고용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가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30여년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고용·노사관계 분야에서 근무했고 한국기술교육대 총장까지 지냈던 그가 고용부가 당면한 여러 현안 중에서도 임금체계 개편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은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는 2016년 정년 60세 시대를 앞두고 임금체계 개편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비단 이 장관뿐만이 아니다.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정년 연장과 맞물려 임금체계가 개편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년 연장 논의에서 이처럼 임금체계 개편이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근간이 되고 있는 호봉제가 정년 연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은 근로자의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문제는 연령 상승과 생산성 증가가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정진호 박사는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연공급제는 근속에 따라 인건비를 상승시켜 고령자 조기 퇴직과 신규 채용 감소, 외부 고용화 등을 유발해 질 높은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 요구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지난 1998년 정년 60세를 시행한 일본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이시다 미쓰오 일본 도시샤대 노사관계학 교수는 지난 5월 서울에서 개최된 '외국의 임금체계 비교를 통한 국내 임금체계 개편 방향' 국제 심포지엄에서 "크게 4단계에 걸쳐 이뤄진 일본 임금체계 개혁의 초점은 연공급 성격을 완화하는 데 맞췄다"고 설명했다.
현재 연공급(호봉제)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임금체계는 직능급과 직무급 등이다. 직능급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특정 지식 또는 역량에 따라 보상을 결정하는 임금체계를 의미한다. 개인의 능력 수준을 평가한 성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직무수행능력의 향상을 촉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능력 평가가 형식적으로 이뤄질 경우 직급이 높은 근로자의 고임금화 현상을 유발해 연공급과 차별화되기 힘든 점은 한계다.
직무급은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중요도·난이도 등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이 때문에 장기근속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직무의 중요도와 난이도 등을 시대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경하기가 힘들고 직무 이동시마다 임금이 달라지게 돼 혼선이 빚어질 수 있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직무급과 직능급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며 "직무급·직능급 등을 도입하기에 앞서 기업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연공성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부 교수는 "호봉제를 단기간에 대체할 수 있는 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임금 연공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기존 호봉제를 유지하면서도 그 운영을 근속 중심에서 능력·성과 요인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호봉제 이외의 직무급·능력급·성과급·성과배분 등의 임금결정 방식을 호봉제 임금체계에 추가로 도입하거나 강화하는 방식 역시 기존 임금체계의 연공성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각 분야별 기업의 임금체계가 일률적일 수 없다는 판단하에 분야별 임금체계 매뉴얼을 발표하는 한편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임금체계 개편 컨설팅을 확대하고 있다. 올 상반기 자동차 제조사 생산직, 은행 사무직, 병원 간호사 임금체계 매뉴얼을 내놓은 고용부는 하반기에 조선, 정보기술(IT), 유통판매직 임금체계 매뉴얼을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다. 아울러 노사발전재단을 통해 개별 사업장에 대한 임금체계 개편 컨설팅도 올해 240곳까지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직급별 임금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사전 준비하고 내년에 조사를 실시해 각 사업장에 제공할 것"이라며 "또 각 사업장이 (자료를) 참고해 직무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정년 60세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임금체계뿐만 아니라 직급승급체계도 손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근속 연수에 따라 직급이 올라가는 현 직급승급체계는 기업들이 근로자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데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수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관리직 대신 전문가로 가는 전문직제 개발을 모색하고 고령 근로자들에게 적합한 직무 개발에 기업과 정부 모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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