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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건강보험과 노블리스 오블리제

"어? 봉급이 왜 이렇게 줄었지?" T.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대다수 직장인의 봉급날인 25일, 사무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직장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건강보험료 소급정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달보다 수십만원이 뭉텅 빠져나간 명세서를 보고 있노라면 입맛이 쓰다. 마음 한편이 떨떠름한 것은 단순히 보험료가 아까워서가 아니다. 현행 건강보험료 체계 아래서 직장인은 말 그대로 '봉'이다. 월급쟁이는 소득신고에 맞춰 에누리 없이 건보료가 징수된다. 반면 지역가입자 사정은 '불법의 왕국'이다. 건보료를 덜 내기 위해 수백억원 자산을 보유한 갑부가 분식집 종업원으로 둔갑하고 연간 수십억원을 버는 유명 연예인이 택시기사로 위장 취업하는 일이 다반사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이러한 '위장취업자'는 1,114명, 환수보험료는 73억원이다. 이 통계를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공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과장을 보태면 자산가 99.9%가 우회 루트로 보험료 징수를 피하고 있다"고 전한다. 국세청은 허위소득신고가 의심되는 자를 세무조사와 고발 등으로 압박하지만 건보공단이 쓸 수 있는 수단은 보험료 재징수뿐이다. '걸리면 본전 안 걸리면 대박'이라는 공식이 굳혀지면서 제대로 보험료를 내는 것이 되레 바보가 되는 구조인 것이다. 정부는 지난 23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개최한 재정전략회의에서 건보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으로 건보요율 인상, 약값 거품 빼기 등을 논의했다. 고액 재산가 피부양자를 선별해 건보료를 부과하는 법시행령 개정안도 곧 입법예고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공정요율 마련 의지다. 임진왜란 당시 도성에 불을 지른 건 왜군이 아니라 민초들이었다. 부자는 적게 내고 가난한 사람이 거꾸로 많이 납부하는 공납의 폐단에 진절머리를 냈기 때문이다. 경비원을 자청하는 빌딩 소유주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바라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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