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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우리는 과연 변하고 있는가

갑을청산^일감나누기등 시대 요구는 바뀌었지만 경제주체는 예전 그대로<br>대기업은 기득권 버리고 협력사는 경쟁력 키우는 새로운 상생모델 보여야


지난 5일 삼성그룹이 상생협력을 위해 1조2,0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올해만 3,270억원을 쏟아 붓는다고 한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3월 500개사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32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고 다른 주요 기업들도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잇따라 선언했다. 대기업의 이런 모습은 분명 이전과는 다르다. 1, 2차 협력업체는 물론 창업벤처들도 두 손 들고 반길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발표 뒤에 항상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5년간'이라는 단서다. 5년 후면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난 뒤다. 그 후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 변화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에 눌려 있던 중소협력업체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고 발언권이 세진 노동계도 곳곳에서 기업과 충돌하고 있다. 정치권은 연일 을(乙)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법안을 쏟아내고 사정 당국들도 뭐 잘못한 게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며 재계와 대립각을 세운다. 최근 6개월도 안 지나 벌어진 새로운 조류다.

그러는 사이 인식의 변화도 나타났다. 최근 일부 언론의 설문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등장한다. 보수 성향의 응답자 중 절반 가까이가 경제민주화의 강력 추진을 주장했고 진보 성향의 과반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공감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책의 동조화 현상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가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의미다.

사회는 이처럼 바뀌었는데 경제주체들은 제대로 적응하고 있을까. 언뜻 보면 'Yes'다. 대기업들은 투자 확대와 상생과 공존의 메시지를 잔뜩 담은 지원책을 잇따라 내놓았고 일부 기업들은 잘못을 바로 잡겠다며 약관에서 갑과 을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시간제 정규직, 정년연장 등과 같은 현안에 대해서는 노사정 대타협도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경제주체들은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며 달라진 모습을 취하려 하는 걸까. 불행히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갑은 비용 줄이기에만 급급하고 을도 주요 매출처를 갑에 고정하고 있다. 기술과 유통혁신을 위한 시도도 매출다변화를 위한 노력도 찾기 힘들다. 정부 방침에 의해, 혹은 분위기에 쏠려 변한 것처럼 보이려고 할 뿐이다.

어디 기업뿐일까. 자식에게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노조원, 국내 최고임금을 받으면서도 눈물 젖은 협력업체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특근수당만 더 달라며 파업하는 노조, 자신만의 리그를 만들며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돈과 바꿔 친 공기업도 여전히 존재한다. 변화에 편승하려고만 할 뿐 어느 누구 하나 달라지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의 변화를 '변화로 포장한 변명'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등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은 달라진 현실에 경제주체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은 그동안 자원이 편중됐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가 나타난 이유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회의 균형추 때문이다.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분명 양쪽의 무게가 달라져야 한다. 대기업이 지금까지 누렸던 기득권을 내려놓고 변화의 고통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한쪽이 많이 가졌다고 빼앗아 오려고만 한다면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최선의 방법은 한편에서 무게를 줄이고 다른 한편도 자체 무게를 늘리려 노력하는 것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협력업체와 노조도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새로운 상생관계가 필요하다.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가 있어야 창조경제도 국민행복도 가능하다.

변화는 언제나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길들여졌던 것을 버리고 경험해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는 두렵고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1860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초대 편집장이었던 월터 배젓은 '롬바르디 스트리트'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스스로 질문해보자. 우리는 지금 과연 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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