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얼마 전 중학생 아들을 납치, 억류하고 있다는 협박 전화에 놀라 사기범들이 요구하는 1,600만원을 송금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지만 범인들이 아들의 이름은 물론 재학 중인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에 가는 시간 등까지 자세히 아는 듯한 분위기에 감쪽같이 속고 말았다. A씨가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은 뒤 '보이스피싱(전자금융사기)'이라는 것을 알고 은행에 지급정지를 요청했지만 이미 1,200만원이 빠져나간 뒤였다. 19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다시 전자금융사기 피해 건수가 급증하고 있어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 같은 피해 사례는 지난해 초 월 500건 안팎이던 것이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지며 중순 이후 월 100여건대로 줄었으나 다시 지난해 말부터 월 300건을 넘어섰다. 범행 수법이 날로 지능화하고 교묘해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주식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증권사 콜센터를 사칭하는 전화가 늘었고 택배물이 도착했다며 본인 확인을 요구하는 전화가 활개를 치면서 전국의 우체국은 문의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한 '대통령 취임식 참석자로 선정됐으니 인적사항을 알려달라'거나 '삼성 특검에서 적발된 부당보험금을 돌려줄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으로 불참했으니 벌금을 내야 한다'는 식으로 사회 현상에 맞게 진화된 수법도 발생해 주의가 요구된다. 유아 및 청소년 실종사건 등으로 부모들의 걱정이 커지면서 A씨처럼 자녀 납치를 빙자해 돈을 요구하는 '악질' 보이스피싱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범인들은 자녀에게 미리 수차례 전화로 욕설을 해 휴대폰 전원을 꺼놓게 만들거나 시험시간 등 전화를 받지 못하는 시간을 이용하는 등 수법이 점점 지능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미국에 유학 보낸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한 사기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등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 검거율이 그리 높지 않다. 때문에 시민들은 범죄 피해를 당해도 사실상 속수무책의 상태에 놓이는 이중 피해를 입는 상황이어서 범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이 늘면서 관련 피해가 줄지 않고 있다"며 "무엇보다 개인들의 철저한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금융기관ㆍ경찰ㆍ검찰 등을 사칭해 인적사항을 묻거나 벌금 등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사례는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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