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상황이 국내 플랜트업계에는 기회입니다.” 윤영석(사진) 한국플랜트산업협회장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고유가로 인해 중동국가의 오일달러 유입 크게 늘어 정유화학플랜트 발주가 늘어나고 있다”며 “고유가 시대의 대안으로 떠오른 원자력발전소, 심해의 유전을 개발하기 위한 해양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플랜트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어 “경쟁력이 크게 향상된 국내 플랜트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올해 사상 최대인 ‘수출 500억 달러’의 기록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윤 회장은 국내 플랜트산업의 원로답게 미래경쟁력 확보를 위해 반드시 개선해야 할 부분도 지적했다. 그는 “플랜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향후 5년간 1만명 가량의 전문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업계는 물론, 정부차원에서도 인력양성을 위한 정책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내 플랜트 산업이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발전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보이지요. 최근 고유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산유국들로의 오일머니 유입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OPEC 회원국의 자산규모다 4조6,000억 달러에 달했을 정도입니다. 풍부한 자금을 확보한 산유국들은 몇 년 전부터 자신들이 자립할 수 있는 산업화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석유를 내다 판 돈으로 자국의 산업화를 일구고, 석유를 한단계 가공해 부가가치가 높은 정유화학제품을 수출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꾼 겁니다. 석유산업과 관련해 업스트림 산업만 해오던 산유국들이 다운스트림 산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다 보니 다양한 플랜트들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 고유가가 산유국의 플랜트 수요를 늘렸다는 말씀인데요. 과거에 비해서 발주 형태도 바뀌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유가가 60~70달러 일 때만해도 중동의 플랜트 발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유가가 꾸준히 올라 100달러 이상이 되자 폭발적으로 발주가 늘고있습니다. 우선 정제된 석유제품을 팔기위한 석유화학 플랜트 수요가 크게 늘었고, 산업화를 진행하다 보니 전기, 담수 등의 시설이 필요해지면서 발주 플랜트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산유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에서도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여년간 원전건설을 전면 중단했었지만, 고유가로 인해 에너지수급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부터 신규원전 건설을 재개했습니다. 선진국의 플랜트 기업들이 최근 수년간 원전건설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원전개발 사업을 지속해왔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 새로운 블루오션이 개척된 셈이군요. 국내 플랜트 업계의 경쟁력은 어느 수준입니까. ▦지난 2003년 64억달러였던 국내 플랜트 수출액이 지난해 422억 달러로 불과 4년 사이에 7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는 과거에 하청업체에 머물렀던 국내 업계가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쌓아오면서 2000년 이후부터 원청업체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수주금액도 대형화되고 수익성도 크게 개선된 것이지요. 특히 국내 업계는 세계시장에서 탄탄한 신뢰를 쌓고 있습니다. 플랜트건설은 워낙 대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유럽의 선진기업들도 보통 납기일을 6개월 이상 넘기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오히려 2~4개월 정도 앞당겨서 납품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합니다. 특히 담수플랜트의 경우 착공부터 준공까지 경쟁국가 기업들은 약 24개월 정도 걸리는 반해 국내 기업들은 12~16개월 정도면 건설을 마칠 정도지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한국 기업들의 신인도가 크게 높아진 것입니다. 덕분에 과거에는 한국 기업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입찰참여를 거부당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꼭 입참에 참여해달라는 초청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 이 영역은 아무래도 대규모 자금이 투입될텐데 자금조달에 어려움은 없습니까. ▦산유국이나 선진국들은 대부분 발주국 정부차원에서 자금을 동원하기 때문에 진출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의 경우 자금조달이 어려워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힘듭니다. 중국의 경우 정부가 직접 나서 30억~5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해주면서 진출기반을 닦아주지만 우리나라는 정부개발원조(ODA) 규모가 작아 지원규모가 미약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ODA규모가 OECD 평균의 4분의1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자원개발과 연계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한승수 국무총리가 방문했던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우 대부분의 산업화를 우리나라가 담당하는 대신 다양한 자원의 개발권을 우리나라가 가져오는 형태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요. 나이이지라의 경우도 한국전력과 포스코건설이 플랜트와 자원개발권을 교환하는 형태로 현지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이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산업화 경험을 높게 평가하고 이 같은 ‘패키지 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부족한 자원을 메우고, 개발도상국들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기술과 노하우를 얻는 것이죠. - 좋은 소식을 들어서 기쁘지만 시장이 너무 중동지역에 편중됐다는 느낌입니다. 선진국 진출상황은 어떻습니까. ▦지난 2006년만해도 우리나라 플랜트 산업의 중동시장 의존도가 53%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29%정도로 줄었죠. 한 시장에 너무 편중되는 것을 탈피하기 위해 아프리카, 러시아, 브라질 등 다양한 시장에 진출한 결과입니다. 선진국은 일반 석유화학플랜트로 진출하기는 힘들지만 해양플랜트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메이저 오일사들이 해양유전개발을 위해 해양플랜트 발주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죠. 실제 우리나라의 해양플랜트 수주금액은 지난 2003년에 10억 달러 정도에 불과했지만 올 들어서는 96억 달러로 크게 늘었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플랜트산업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을 꼽으신다면.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인력수급 문제입니다. 수주금액이 늘어나는 만큼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국 성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업계는 물론, 정부도 인식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펼쳐야 합니다. 업계의 마케팅 능력도 강화해야 합니다. 플랜트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라는 특성과 대규모 공사라는 점 때문에 개별기업이 아닌 국가차원에서의 수주지원이 필요합니다. 특히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에 진출할 때 사업타당성 조사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연간 500억원, 일본은 200억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는 데 우리나라는 25억원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로는 여비 정도만 겨우 감당할 수 있을 정도죠. 최소한 100억원 정도는 되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아프리카처럼 전략거점국가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 성공가능성이 있는 곳들에 대해서는 외교적, 경제적 지원을 통해 장기거점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격적인 산업개발 시기를 대비해 미리 포석을 깔아 놓아야 국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할 때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고속성장 플랜트산업 국가차원 지원 늘리면 새 성장신화 주역기능" "현업에서 한 발 물러나니 오히려 큰 물이 보인다." 윤영석 회장은 이번 인터뷰 내내 우리경제 전반에 대해 폭 넓은 의견을 쏟아냈다. 그는 플랜트 산업이 효자산업으로 꾸준히 발전하려면 국가차원의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수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단기적인 성과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외교,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시장진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윤 회장은 "세계적인 자원 부국들과 플랜트산업 노하우와 자원개발권을 교환하는 방식은 국가의 미래에너지 확보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또 "우리나라 플랜트업계가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현재 세계시장점유율은 6% 수준에 불과하다"면서도 "이는 앞으로 94%의 시장이 남아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가 이뤄진다면 플랜트 산업이 새로운 신화창조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북한의 개방과 관련한 플랜트 산업에 대한 의견도 내놓았다. 그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구축은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산업시설이 전무한 북한이 개방돼 경제건설과 산업화에 나선다면 대한민국은 한단계 더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영석 회장은
옛 대우重·한국重 거친 샐러리맨 출신 경영인 윤 회장은 직업이 CEO라 할 정도로 대표적인 셀러리멘 출신 경영인. 40대 초반 옛 대우그룹 주력인 대우중공업(현 대우조선해양) CEO가 됐다. 당시 그는 고질적인 노사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조직에 과감한 혁신경영을 도입해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CEO로 자리를 옮긴 후엔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착근시켰으며, 담수플랜트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프로필 ▦1938년생 ▦경기고ㆍ서울대 상대 졸업,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경영학석사 ▦1968년 대우실업㈜ 입사 ▦1980년 대우중공업 사장 ▦1985년 대우조선 사장 ▦1990년 ㈜대우 사장 ▦1995년 대우중공업 회장 ▦1995년 대우그룹 총괄회장 ▦1998년 두산중공업 사장 ▦2002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2003년 한국플랜트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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