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함으로써 엔저 현상이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자민당 정권이 침체한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강력한 양적 완화 정책을 펴겠다고 줄곧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엔저 시대에 맞춘 재테크에도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당장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 경제가 꿈틀거릴 경우 일본 증시는 물론 일본 펀드가 새롭게 주목 받을 수 있고, 엔화 약세 환경에서 기업들도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엔저 현상에 따른 환차손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일본 주식 상승의 플러스 효과가 엔저로 인해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통화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은 결국 해당국 경제가 좋지 않다는 방증인 만큼 무조건 호재로만 보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엔화 수혜주에 주목할 필요=일본 정부의 경기 부양 스탠스 강화로 엔저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일본은행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무제한으로 엔화를 찍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단기적으로 엔저 수혜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통상 엔화가 약세가 되면 일본 기업과 경쟁 관계에 있는 수출 중심의 대기업 경쟁력이 악화돼 채산성이 나빠질 수 있다. IT, 자동차 관련주가 대표적이다.
다만 관련 기업들의 피해 수준도 천자만별이라 잘 따져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은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미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 환 리스크의 일률적인 적용은 무리라는 것이다.
반면 엔화 부채가 많은 기업은 갚아야 할 원화 금액이 줄어들어 환차익이 생긴다. 롯데쇼핑, 롯데제과, 대한항공, 한국전력 등이 이런 사례에 속한다. 또 두산인프라코어, 한국정밀기계, 화천기공 등 일본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높은 기업도 원ㆍ엔 환율 하락시 영업이익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완화가치 상승으로 여행이 늘어날 수 있어 여행주 등도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 펀드 관심 가져야=엔화가 약세가 되면 일본 증시가 기지개를 켤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일본 현지 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일본 펀드의 수익률이 올라갈 수 있다.
실제로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운용 순자산 규모가 10억원 이상의 일본펀드의 최근 1개월 수익률은 7~8%정도로 3개월 수익률보다 4%포인트 가량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일본 증시에서는 외국인 기관 투자자들이 '바이 재팬(buy-japan)'움직임을 보이며 차기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 펀드의 수익률이 주가 지수 상승에 힘입어 좋아지고 있지만 환율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펀드의 경우 달러가 아닌 엔화로 환전돼 투자되는데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 환차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본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긍정적이지만 환율 효과는 마이너스인 만큼 환 헤지형 일본펀드에 가입하라는 조언인 셈.
김영호 하나은행 영업1부 골드클럽 PB부장은 "그간 고객들의 일본 증시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았지만 최근 수익성이 많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라며 "투자 지역 다양화 측면뿐만 아니라 투자 통화 다변화 측면에서도 투자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환율 변동성 위험은 상존하는 것은 유념해야 한다"며 "환 헤지를 하는 펀드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만큼 환차손을 헤지할 수 있는 지 여부를 살피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신흥국 증시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혔던 미 달러화가 약세인 상황에서 또 다른 안전자산이었던 엔화마저도 약세로 돌아선 만큼 신흥국 시장으로 돈이 몰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외에 엔화 대출 수요가 있는 사람이나 기업이라면, 엔화 환율의 움직임과 전망을 꼼꼼히 살펴가면서 돈을 빌려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엔저 재테크 전략, 유연하게 가져가야=엔화 약세 기조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엔화의 구조적인 약세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엔저가 트렌드로 정착했다기 보다는 이벤트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우경화된 아베의 공약이 현실에서 실행되기에는 이런 저런 난관이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 무제한적 양적 완화는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실물 수요를 끌어올리는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실제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일본의 부채 확대 정책이 실시될 경우 신용등급을 내릴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엔저를 활용해 다른 나라와의 환차익을 추구하는 와타나베 부인 효과 등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낮다. 엔화 약세 트렌드가 강화되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실제 HSBC 등은 내년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화 약세를 트렌드보다는 모멘텀 플레이의 영역으로 바라보길 조언하고 있다. 엔화 약세에 따른 재테크 전략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유연하게 가져가라고 주문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엔화 가치 하락이 단기 추세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분산 투자 차원에서 일본 펀드에 관심을 두고 투자하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일본의 환율 정책에 대한 세계 각국의 견제와 부작용 등을 감안하면 엔저의 장기적 추세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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