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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본말 전도된 한나라당의 변신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당의 정강정책에서 기본이념인 '보수'라는 표현을 지우기로 함으로써 정당의 이념적 노선은 물론 정체성조차 모호해지게 됐다. '보수' 외에 '포퓰리즘에 맞서' '대한민국의 선진화' 등도 삭제하기로 했다. 이른바 '보수'가 주는 이미지가 올해 선거에서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위기가 보수적인 노선에서 비롯됐고, 따라서 그것을 없애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단견이다. 부정부패, 도덕성 문제, 시대적 흐름과 국민의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무능력 등이 겹쳐 빚어진 위기를 마치 당의 이념과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가 보수적 이념에 기초한 당의 정체성에 있는 것은 아니다. 건전한 보수적 가치와 집권당으로서의 책임감 등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오만과 타성에 빠져 국민적 실망과 분노를 산 것이 근본 이유이다. 이번 돈봉투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독선적 국정운영, 인사실패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위기의 본질이다. '보수' '대한민국의 선진화' '반포퓰리즘' 때문에 국민들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보수적 가치'를 버린다면 진보인지, 사회주의 노선을 걷겠다는 것인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어디로 갈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강정책에 공정경쟁ㆍ공정시장ㆍ분배정의 등을 새로 넣고 중도 쪽으로 당의 중심을 이동시킨다는데 과연 정당성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나라당의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위기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자유와 시장경제를 창달하고 튼튼한 안보와 질서확립 등의 보수적 가치를 내던지면 위기가 극복될 것으로 믿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건전한 보수적 가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국민과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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