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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 세계적 불균형속 원화강세

미국의 무역 적자 확대, 중국의 위안화 저평가, 일본의 초저금리 등 세계적 불균형 속에 한국 원화만 홀로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주 서울 외환시장에서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00엔당 750원대로 추락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엔ㆍ원 환율은 100엔당 1000원 수준에서 안정적이었으나 근래에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원화의 나홀로 강세 현상은 지난 2002년 이후 글로벌 약세를 유지해온 달러화에 대해 원화는 41%나 절상된 반면 엔화와 위안화의 절상 폭은 각각 6.9%, 8.4%에 그쳤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경기 둔화 조짐이 보이자 금리인상을 자제하며 더욱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다. 달러화 약세가 늘어나는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고 경기 회복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에서 미국은 중국의 위안화를 대폭 절상하도록 압력을 가하지만 위안화의 절상 속도는 점진적인 수준에 그친다. 일본의 경우 초저금리정책을 유지함으로써 엔저(低)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이후 두 차례 정책금리를 올렸지만 여전히 연 0.5%에 불과해 미국ㆍ유럽연합(EU) 및 한국보다 훨씬 낮다. 이에 따라 저금리의 일본 자금을 고금리의 달러 및 원화 자산 등에 투자하는, 소위 엔캐리 트레이드에 나서고 있다. 이것이 엔화 약세, 원화 강세를 유발해 대일 무역 적자를 확대하고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는 국내 주력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엔저 덕분에 일본 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 한국 기업은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한국의 상대적인 고금리는 일본 자금의 국내 유입을 유발해 원화 강세를 촉진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국내로 유입된 엔캐리 자금은 약 6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 자금이 외환시장에서 원화 강세를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뿐 아니라 이 같은 외화 차입 증가 및 외국인의 국내 자산 투자 증가로 늘어난 유동성이 국내 부동산 및 증권시장에서 자산 가격을 급등시키고 있다. 한국이 외화 자금의 블랙홀이 되고 있는 것은 환율 하락(원화가치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 원화 환율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조선사 등 국내 수출기업들은 달러로 계약한 수출 물량을 즉각 원화로 바꾸는 선물환 매도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ㆍ4분기 중 국내 수출 기업들의 선물환 순매도 규모는 131억달러로 전분기보다 25%가량 늘었다. 이 물량을 사들인 은행들은 환위험을 없애기 위해 달러 자금을 해외로부터 차입해서 외환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국내외 금리 차가 커질수록 외화 자금을 조달해서 원화자산을 매입하는 차익거래(arbitrage)는 무위험인데다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크게 늘어난다. 은행들의 외화 차입 자금이 크게 늘어나면서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율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국내 자산시장에 과잉 유동성을 초래한다. 따라서 부동산ㆍ주식 등 자산 가격을 올리고 있다. 환투기 거래가 국내 자산 투기 붐을 일으키는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무역 흑자가 계속되고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가 늘어났는데도 한국의 단기외채가 급증한 가장 큰 원인은 금융기관들이 외화 차입을 계속 늘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단기외채는 3월 말 기준으로 1,300억달러에 육박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많기 때문에 외화 위기의 재발 가능성은 적지만 그렇더라도 전혀 방심할 수는 없다. 환투기에 의한 단기외채 급증은 외환시장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 예측하지 못한 국내외 여건 변화에 따라 단기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환율이 급등하는 등 국내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들의 외화 차입을 자재해줄 것을 행정지도하는 등 위험 관리에 나서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영업하는 외국은행들의 단기외화 차입이 크게 늘었는데 국제금융환경이 급변하는 경우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계속되는 원화 환율의 하락은 정책 당국에 커다란 고민거리이다. 만약 정부가 외환시장에 강력히 개입하거나 국제금리 변동으로 급격한 엔캐리 트레이드 해소 등이 발생할 경우 국내에 들어온 외화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 환율이 급반등할 수 있다. 또한 과열 상태인 중국 경제 및 증시가 경착륙할 경우도 한국 경제에 미칠 부작용이 크다. 정부가 외화 차입 증가에 따라 늘어난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려면 국내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금리를 올리면 원화가치를 높여서 환율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원화가치 안정을 위해서 금리를 낮춘다면 국내에 과잉 유동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부동산ㆍ증권 등의 버블을 조장할 것이다.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렇다고 지속되는 환율 하락 추세나 자산 투기 붐을 방관할 수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단기투기성 외화 차입을 막느냐는 것이다. 자본 이동을 규제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핫머니의 유입을 억제하면서 장기투자를 동요시키지 않는다면 그러한 자본 통제는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고 외환위기 재발을 방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해에 태국이 국외로 유출되는 외국인 투자자금에 통제를 가하자 외국인 투자가 대폭 빠져나가면서 태국 주가가 일일 최대 낙폭인 15%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 세력에 의해 대규모 단기자본 이동이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경우 제한적인 자본 통제는 시장이 붕괴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단기적인 비상수단이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거시경제정책의 안정적 운용을 대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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