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책과세상] 은 둘러싼 동서양 화폐전쟁 통해 미래 엿보기

■백은비사(융이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br>은의 제국서 나락으로 중국 흥망성쇠 함께 한<br>500년 은의 비밀 되짚어 새 안전자산 가능성 전망


중국 영화의 거두 고(故) 시에진 감독이 연출한 아편전쟁의 한 장면. 아편수입으로 인한 피해와 은의 유출을 막기 위해 청나라 선종이 아편무역 금지령을 내리자 영국과 청 사이에 아편전쟁이 발발했다.

이제는 금(金)보다 은(銀)인가. 정보산업(IT)과 환경, 바이오 등 미래 산업에서 중요한 원자재로 쓰이는 은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달러가 위기에 처하면서 새로운 투자 상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1월에는 미국에서 은화 판매량이 742만온스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1986년 미 화폐주조소가 문을 연 이후 월별 판매기록으로는 최고치다. 화폐 가치를 보전해주는 귀금속으로서는 금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더 저렴한 안전자산으로서 큰 수익을 노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은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특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1999년 은을 대량 매수해 주식 투자에 뒤지지 않는 수익을 올렸으며, 최근에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결국 화폐 전쟁의 승자는 실물이며 금과 은 중에서 선택하라면 은을 사겠다"고 말해 투자자의 이목을 끌었다.

중국에서 경제경영서 전문 작가로 활약 중인 저자가 펴낸 '백은비사(白銀秘史)'의 원제는 은의 비밀(Secret of Silver)이다. 저자는 "달빛처럼 매혹적인 빛을 내뿜는 은은 중국과 함께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500년이란 시간을 걸어왔다"며 "이 금속은 중국이 자본주의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잃었는지, 또 중국이 서구 열강에 어떻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옆에서 똑똑히 지켜본 산 증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한때 '은의 제국'이라 불렸던 중국 명대의 '은 사용 금지령'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은을 재물축적 수단으로 삼은 중국인의 모습을 통해 은과 정치경제의 관계를 살펴봤다. 일찍부터 상품 경제가 발달한 중국은 지폐 제도를 도입해 부족한 금속 화폐를 충당하고 중앙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돈과 부를 동일시하지 않았던 중국인은 관습대로 은을 화폐로 사용했고 황제와 관리들도 은을 재물 축적의 수단으로 삼았다. 대항해 시대 서양 열강들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여기서 생산된 금과 은으로 동방에서 후추와 향료, 비단과 차 등을 구입했다. 중국은 이를 통해 엄청난 은을 벌어들였지만 이것을 다시 시장에 내놓지 않고 집 안 창고 혹은 땅 속에 묻어 놓기만 했다, 그야말로 은이 넘쳐나는 '은의 제국'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저자는 "결국 은을 회수하기 위한 영국의 계략으로 아편전쟁이 발발했고 파운드가 금을 본위화폐로 삼으면서 중국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은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은의 저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중국의 봉건 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은 역시 역사에 종말을 고하는 듯 했으나 미국이 은 수매 법안을 발표해 중국의 은을 고가에 사들이겠다고 선언하자 세계의 은이 다시 중국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은의 집결지였던 상하이는 전에 없던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거품이 꺼졌을 때는 이미 대량의 은이 해외로 빠져나간 상태였고 이제 막 발돋움하기 시작한 중국의 민족 산업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저자는 100년에 걸친 중국과 서구 열강의 금융 전쟁을 서술하면서 중국이 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철저히 반성적 시각에서 파헤친다. 시대착오적인 자부심과 외부 세력에 대한 두려움이 변화를 거부하고 개인적인 탐욕에만 몰두하는 지도자와 가난하면서도 무지한 국민을 낳았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여전히 금보다는 값이 싼 은을 선호한다. 지난 해 중국의 은 가격은 14% 상승했으며 올해는 그 수요가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은이 보여준 불안정성과 변동성이 인간의 불안 심리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미래 사업의 원자재로,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는 은의 가능성에 집중한다면 새롭게 빛을 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만 4,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