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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살인면허'

‘살인면허(Licence to kill)’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 허가증이라는 것이 가당치 않지만 ‘007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레바논 학살극을 지휘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올메르트 총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살인면허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무력단체인 헤즈볼라에 잡힌 2명의 병사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보름 넘게 레바논을 쑥밭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400명 이상을 죽이고 75만명을 난민으로 만들었다. 사망자 가운데 3분의1은 어린아이다. 레바논 상황 한반도와 흡사해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 지역의 주민들에게 북부 지역으로 피난할 것을 권유해놓고 피난길에 오른 여성과 어린이들이 탄 버스를 향해 전투기에서 미사일을 쏘았다. 심지어는 적십자사 구호차량과 UN평화유지군도 공격했다. 이들 공격은 대부분 의도적 공격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로 국제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북아일랜드의 평화운동가 베티 윌리엄스 여사는 최근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어린이들에게 “부시 미 대통령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체면을 접고 극단적인 테러리스트 같은 말을 쏟아냈다. 이런 이스라엘의 과도한 레바논 공격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중동 국가뿐 아니라 아세안 국가들이 이스라엘 비난 성명을 채택했으며 유럽과 남미 국가들까지 즉각 살인을 멈출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에서도 시위를 할 정도다. 하지만 올메르트의 태도는 여전히 강경하다. 부시가 발행한 살인면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외신에서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이달 말까지 헤즈볼라를 무력화할 시간을 줬다는 설도 보도하고 있다. 시한부 살인면허를 발행했다는 설명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보름이 지나서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중동으로 파견했다. 라이스는 레바논에 이어 이스라엘을 방문했지만 애초부터 싸움을 말리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라이스는 레바논 정부의 즉각 휴전제의를 묵살한 뒤 다음날 이스라엘로 날아가 올메르트 총리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에 합의했다. 미국은 오히려 이번 기회에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이란과 시리아가 뒤를 봐주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이스라엘이 좀더 화끈하게 손봐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미국은 유럽ㆍ중동 국가 회담에도 참석했다. 즉각 휴전이냐 헤즈볼라의 무장해제 후 휴전이냐를 놓고 국제사회를 상대로 논쟁을 펼쳤다. 미국의 주장대로 즉각 휴전은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급할 것이 없다. 두들겨 맞고 있는 레바논과 이를 지켜봐야 하는 중동의 형제국가들,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 남미의 상식을 가진 국가들만 애가 탈 뿐이다. 휴전까지는 갈 길이 멀다. 개전 후 레바논 사상자가 이스라엘의 10배가 넘는 등 전황이 너무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협상은 힘과 이해관계가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균형이 무너진 협상은 성사된다 해도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중동상황이 동북아 정세와 비슷하다는 데 있다. 미국의 살인면허를 가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때리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레바논의 중동 형제국인 이란은 목청만 돋우고 있고 시리아는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美·日·中 사이 입지 신중해야 이스라엘을 일본으로, 레바논을 북한으로, 이란을 중국으로, 시리아를 한국으로 대입하면 놀라울 정도로 한반도 상황과 똑같다. 미국이 뒤에 버티고 있으며 일본이 북한을 위협하고 있고, 혈맹국인 중국은 북한을 말 이외에는 지원할 것이 없다. 한국은 어찌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고 허둥대는 모습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위험한 두 곳의 움직임이 너무 흡사하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발행한 살인면허를 한반도에서도 내주지 않으란 보장은 없다. 특히 지금처럼 남과 북, 한국과 미국ㆍ일본, 북한과 중국간 거리감이 크게 느껴질 때 더욱 위험하다.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균형을 파악해야 한다. ‘힘이 없으면 공정함도 없다’는 것은 이번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태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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