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15분. 대학생 오경곤(25) 씨는 새벽예배에 나갈 준비를 마치자마자 아이폰을 꺼내 든다. '서울버스' 어플(어플리케이션ㆍ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집 앞을 지나가는 9번 버스가 몇 시에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평소 5시 20분이면 오는 버스가 오늘은 폭설 때문인지 10분 늦게 도착한다는 정보가 뜬다. 오 씨는 다시 침대에 누워 좀 더 여유를 부리다가 버스 도착시간에 맞춰 집을 나선다. 요즘처럼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릴 땐 추위에 떨며 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요긴하기 이를 데 없다. 교회 예배 시간에는 성경을 찾거나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책 대신 휴대폰 액정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는 "아이폰을 사용한 뒤로는 무겁고 부피 큰 성경책과 찬송가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오히려 전보다 더 빨리 성경 구절이나 찬송가를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예배를 마치고 서점에 들른 오 씨는 일본어 능력시험 2급 책 한 권을 집어들고 가격을 확인한다. 정가로 판매하는 서점의 가격은 1만8,000원. 이때 아이폰을 꺼내 '지름도우미' 어플을 연결해 책 뒤의 바코드를 찍어보자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는 1만1,580원에 판매중이라고 나온다. 무려 6,500원이 넘는 돈을 낭비할 뻔 했다는 생각에 안도하면서 인터넷으로 주문하기로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과 조교인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졸업 사은회비를 오늘까지 내야 한단다. 버스에서 내려 은행까지 걸어가기엔 날씨가 너무 춥다. 다시 아이폰을 꺼내 '하나은행 모바일뱅킹' 어플을 켜고 계좌이체를 통해 사은회비를 낸다. 집에 도착해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여자친구와의 약속시간. 약속장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서울 맛집' 어플을 확인하자 대학로 맛집목록이 줄줄이 뜬다.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인도음식점을 찾아 전화로 미리 예약해놓는 센스를 발휘한다. 식사를 마치고 여자친구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놀자며 노래방으로 끌고 간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노래방. 하지만 노래방책들은 여자친구의 친구들에게 점령된지 오래다. 아이폰을 꺼내 '노래방책' 어플을 작동, 여자친구와 함께 부를 듀엣곡 '우리 사랑하게 됐어요'의 번호를 검색해 예약한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택배추적' 어플을 연결해 며칠 전 주문한 스피커가 언제 도착하는지 확인하고 잠자리에 든다. 국내 스마트폰 열풍에 불을 지핀 아이폰이 도입된 지 50여일이 지난 가운데 아이폰이 사용자들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본 사례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하루를 아이폰으로 시작해 아이폰으로 마무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상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지난해 11월 국내 아이폰 출시에 맞춰 발표한 '아이폰이 가져올 혁신과 변화'라는 보고서에서 아이폰이 소비자들의 IT 활용패턴을 과거보다 매우 적극적으로 바꿔놓는 동시에 휴대폰의 기능을 단순한 통신 미디어에서 업무와 생활의 미디어로 확대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같은 예측은 속속 실현되고 있다. 실시간 인터넷 이용이 가능한 아이폰의 매력을 십분 활용해 버스 도착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나가는가 하면 GPS(위성항법장치)를 통해 처음 가는 길도 한 눈에 꿰뚫어볼수 있고 유명한 맛집도 쉽게 찾아갈 수 있게 됐다. 평소 잦은 술자리로 인해 대리운전을 자주 이용하는 영업사원 이종민(35)씨에게도 아이폰은 매우 유용한 존재다. '아이 대리운전' 어플을 사용할 경우 아이폰에 내장된 GPS가 근처 대리운전기사들의 위치를 바로 알려주기 때문. 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사를 지정하면 대리운전기사에게 직접 전화가 걸려와 예전보다 귀가시간이 좀 더 빨라졌다.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길치'로 불릴 정도로 길눈이 어두운 조명준(31)씨도 아이폰의 '네이버 지도'나 '다음 지도' 어플을 사용한 뒤론 처음 가보는 곳도 마치 고향집 가듯 쉽게 찾아간다. 각종 증권정보나 기업 관련 뉴스를 검색해야 하는 송치호 KB투자증권 홍보실장은 아이폰이 생긴 후론 외부에 나가서도 실시간 인터넷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아이폰은 아날로그적인 태도가 강한 음악인들의 생활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박천빈(26)씨는 전공 특성상 곡 작업을 자주 하게 되는데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아이폰의 '베이스기타' 어플을 활용해 오늘 연주할 곡을 미리 연습해본다. 또 '드럼 마이스터' 어플로 함께 작업하는 드럼 연주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드럼의 음을 자세하게 짚어준다. 박 씨는 "예전엔 주변에 컴퓨터가 없을 경우 다른 연주자들에게 일일이 입으로 음을 알려줬는데 이젠 아이폰으로 보다 정확하게 음을 전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기존의 악기 대신 아이폰을 통한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스탠포드대학 학생들과 교수로 구성된 '스탠포드 모바일폰 오케스트라'는 지난해말 아이폰을 활용한 첫번째 콘서트를 가졌으며 미시건대학은 최근 아이폰을 사용한 악기와 어플리케이션 개발수업을 정규교과과정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아이폰의 기능이 오히려 직장인들에겐 족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같은 부서 전 직원이 아이폰으로 교체한 회사원 김선희(27ㆍ가명)씨는 요즘 들어 업무부담이 더 늘어난 것만 같다. 아이폰으로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메신저 접속이 가능해지다 보니 팀장이 외근을 나가서도 수시로 메신저를 통해 업무 지시를 내리기 때문. 최근에는 외근중이던 팀장이 아이폰으로 메신저에 접속해 '지금 회사로 들어갈테니 다들 같이 저녁 먹고 가자'고 통보하는 바람에 퇴근도 미루고 기다린 적도 있다. 김 씨는 "팀장이 외부에 나가있더라도 언제 메신저로 말을 걸지 모르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며 "왠지 아이폰을 받게 된 뒤로는 항상 팀장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아이폰은 지난해 11월말 국내에 첫 출시된 지 한달 여 만에 단시간 최다 판매대수인 20만대가 팔려나갔다. 아이폰 열풍의 비결은 단연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현재 아이폰 및 아이팟 터치가 출시된 전 세계 77개국 사용자들은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건강, 여행, 참고자료 등 20여개 카테고리 내에서 10만여개 어플리케이션을 선택할 수 있다. 이에 힘입어 아이폰 개발업체인 애플은 지난 6일 아이폰 및 아이팟 터치 사용자들의 앱스토어(App Store) 다운로드 건수가 30억건을 넘었다고 밝혔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당분간 앱스토어를 따라잡을 만한 경쟁자는 없어 보인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동안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층에 국한됐던 아이폰 사용자는 앞으로 세대를 초월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영연구원은 최근 국내 기업 CEO 1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30%가 이미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전체 응답자의 56%는 '지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지만 향후 1년 내에 구입하겠다'고 답해 연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CEO가 10명당 9명에 이를 전망이다. 아이폰이 몰고온 일상 생활의 변화가 중장년층인 '사장님'과 '회장님'들에게도 적용될 날도 이제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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