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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임금님은 왜 발가벗고 행진하게 됐나

<9> 리더의 자세









학생들에게 안데르센 동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단연 1위는 '벌거숭이 임금'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임금님이 대중들 앞에서 발가벗게 됐을까? 옛날 옛적에 임금님이 한 분 계셨다. 1시간마다 옷을 갈아입기를 원하는 위인이다. 이웃나라 사기꾼들이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기회를 잡는다. "저희가 만드는 옷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영롱한 빛깔을 내는 천으로 만듭니다. 다만 무능하고 부도덕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한 달만 주시면 옷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라!" 임금님의 명령에 사기꾼들은 옷을 만드는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1주일이 지나자 궁금해진 왕이 현장을 방문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신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무능하고 부도덕하단 말인가?'

일단 영롱한 색깔이 눈에 보인다고 거짓으로 둘러치고 난 뒤, 왕은 좋은 꾀를 생각해낸다. '옳아, 이참에 내 밑에 있는 신하들 중에 무능하고 부도덕한 인간을 좀 정리하는 기회로 삼자!' 웬걸,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온 신하들은 하나같이 옷 색깔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드디어 퍼레이드 날이 왔다. 임금님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행진에 나선다. 다 들 침묵하고 있는데 한 어린아이가 소리친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래요!" 그 임금님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안데르센의 정답은 '계속 행진'이다. 여러분이 그 임금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첫째, 임금님이 애초 벌거벗게 된 원인은 자업자득이다. 패션을 그렇게도 좋아했다는 것부터가 리더로서 함량미달이요, 외관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진 무능력자에 불과하다. 사옥을 지나치게 크게 짓거나 비싼 미술품을 사들여서 건물을 치장하는 것들도 다 이런 종류에 속한다. 임금이 이웃나라 사신에게서 상아젓가락을 선물 받자 관직을 사퇴한 신하가 있었다. 상아젓가락으로 산해진미를 먹을 것이고 그 음식들은 옥쟁반에 담길 것이 뻔하다는 이유다. 그렇게 과시욕을 내보이는 리더는 결국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릴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다. 2,500년 전 중국의 철학자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놀라운 통찰력이다.



둘째, 외부인들의 말을 자신의 부하들보다 더 신뢰한다는 것은 리더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외부인의 시각으로 자기 조직을 바라봐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외부인의 조언'에 자신의 부하들을 시험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 외부인의 말 한마디에 행동을 마구 바꾸다 망해버린 '당나귀 팔러 장에 가던 아버지와 아들' 이솝우화가 기억나지 않는가. 외부 사기꾼들의 말은 찰떡같이 믿고 자신의 부하들의 능력과 도덕성을 시험해보려고 한 왕은 이미 리더의 자격을 포기한 자다. 더욱 가관인 것은 부하들도 자신의 보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한결같이 '옷 색깔이 영롱하다' 말하지 않았던가. 어떤 조직에서 만장일치가 일어나면 그것은 무효다.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때다. 어쩌면 이런 조직에서 과감하게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신하가 있다면 분명히 왕따 당했을 것이다.

셋째, 세상 사람들이 다 비웃고 조롱하는 상황에서 왕은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행진을 한다. 백성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점에서 이 독재자는 후안무치한 존재다. 물론 우리의 현실은 이것보다는 복잡하다. 과연 자신이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말도 안 되는 엉터리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기특한 효자 노릇을 할 옥동자인지는 쉽게 구분이 가지를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리더가 직접 챙기는 프로젝트는 대개 실패하기 마련이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할 수가 없는 채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임금님이 사기꾼들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고 난 후에는 무조건 예스만을 열창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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