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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외고 앞. 재수생 딸을 응원하러 경남 통영에서 올라온 김모(49)씨는 날이 따뜻해 다행이라며 "날씨가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긴장감에 떨리는 마음이 날씨 덕분에 잠시나마 풀렸다는 것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던 지난해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패딩에 얼굴을 칭칭 감은 목도리가 주류였는데 올해는 체육복, 후드 집업 점퍼 등 한결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풍문여고 학생들이 선배들을 위해 준비해온 일회용 손난로도 절반 가까이 남았다.
응원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고사장 앞에서 진을 친 후배들의 응원도 지난해보다 더 활기찼다. 상명대 사범대 부속여고(상명여고) 2학년 김아리양은 "지난해는 감기에 걸렸는데 오늘 날씨 같으면 밤샘 응원도 고생스럽지 않겠다"며 "날씨만큼이나 선배들도 시험 운이 좋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 입구에는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다 아는 문제여서 심쿵" "정답 저격" 등 최근 인기를 끈 유행가를 인용하거나 패러디한 이색 구호들도 눈에 띄었다. 수능마다 새로운 구호를 개발하는 것도 전통이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설명이다. 이날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 학교를 찾아 "날이 예년과 달리 포근해 시험 보는 여건도 좋으니 침착하게 공부한 내용을 잘 쓰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수험생들을 격려했다.
올 수능에도 지각생들은 경찰·학교 등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입실했다. 이화외고 앞에는 오전8시께 수험생 김지수양과 어머니가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기도 했다. 막 감은 머리를 말리지 못해 까치집이 된 김모양에게 어머니 윤정란씨는 고이 품에 안고 온 도시락을 건넸다. 윤씨는 "딸 도시락은 다 맞으라고 동그랑땡을 싸줬다"며 수줍게 웃었다. 경기 지역에서는 200여명의 수험생들이 경찰차, 택시 모범운전자회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대구 지역에서는 학생 세 명을 태운 한 학부모가 차량 내비게이션에 고사장인 북구 복현동에 있는 영진고를 영남고(달서구 상인동)로 잘못 입력해 딴 곳에서 시험을 치르는 일도 있었다. 영남고에 도착해서 시험장을 잘못 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돼 학교 측에서 임시 좌석을 마련해 수능을 치르도록 했다.
경기 안산시에서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인 단원고 3학년 학생 72명도 수능을 치렀다. 단원고 2학년 학생들도 '재수없다' 와 같은 피켓을 들고 선배들을 응원했다. 일부 학생들은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시험을 치렀다. 한 세월호 유족은 "우리 아이와 둘도 없는 친구들인데 꼭 시험을 잘봤으면 좋겠다"며 "상당수 유족이 개인적으로 생존학생들에게 응원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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