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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은 물론이고 식품포장의 유통기한 표시방법 하나까지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바로 일본 시장입니다. 일본에 먹거리를 수출하려면 업체들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도쿄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사이타마현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진(사진) 재일한국농식품연합체 회장은 한국 식품의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의 까다로운 식품유통 시스템에 맞춰 제품의 품질을 규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일한국농식품연합체는 한국 가공식품을 일본으로 수입하는 중소 유통업체들의 연합체로 지난 2005년 설립됐다. 현재 회원 수는 30개사다. 김 회장도 국내 중소기업의 막걸리와 김치 제품을 수입해 일본 시장에 공급하는 '명성'이라는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식품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김 회장이 평가하는 일본은 한마디로 '까다로운' 시장이다. 제품 포장지에 찍히는 유통기한 표시방법이 규격과 맞지 않는다며 일본 유통업체로부터 클레임이 걸리기도 하고 한류가 침체된 요즘에는 제품에 찍힌 한글 표기를 없애달라는 요구가 들어오기도 한다. 불량품이 나오면 새 제품으로 거래를 트기는 당연히 매우 어려워진다. 일본 유통시장 진입을 위한 관문이 되는 대형 벤더들의 식품전시회에 참가하려면 3개월 전에는 제품을 보내야 한다. "치밀하게 짜인 시스템 안에서 식품 유통이 이뤄지기 때문에 그 시스템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의 시스템이 국내 농식품 업계에서 아직 충분히 인지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김 회장은 "한국 식품의 가장 큰 문제는 품질규격화가 안 돼 있다는 것"이라며 "일본 시장에 진출하려면 맛은 물론 포장과 표식에 이르기까지 일본 유통업계가 요구하는 규격에 맞춘 대응이 필요한데 국내 식품업계는 그런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일 관계 악화와 엔화가치 하락 등 수출여건이 악화한 상황에서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회장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연합회 회원사들의 매출은 2011년 대비 30~50%가량씩 줄어든 상태다.
다만 일본 시장은 한국 식품이 수출로 승부를 걸 만한 시장인 것도 분명하다. 한류 붐 당시 한국 식품이 일본의 일상식을 제외하면 거의 1, 2위를 다툴 만큼 인기를 누린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이기는 하나 일본 입맛에 대한 한국 식품의 접근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며 "한국인들도 좋아하고 잘 먹는 음식을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 수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일본 소비자들의 입맛 잡기에 성공한다면 다른 아시아 시장에서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도 있다. 김 회장은 "일본이 매우 까다로운 시장인 것은 분명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일본 진출에 성공한 식품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 시장 공략은 한국 식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사이타마현=신경립기자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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