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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21세기형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묻는다

정상범 논설위원

美·獨 IoT 규격 표준화 추진에도

국내기업 존재감은 中에도 밀려

스마트공장은 자동화 수준 불과

기업간 협업으로 SW파워 키워야

정상범 위원




지난 4월 말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산업기술전인 하노버산업박람회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깜짝 등장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국 대통령이 독일의 박람회에 참석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의 참석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오래전부터 공을 들인 노력의 결과였다. 미국과 제조업 패권경쟁을 벌여왔던 독일이 미국에 보낸 러브콜이 마침내 결실을 거둔 것이다. 양국은 이를 계기로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 제휴관계를 맺고 국제규격 표준화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데 합의했다. 제조과정의 공정표나 청사진을 공유함으로써 비용부담을 낮추고 관련기기를 양산해 국경을 넘나드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설비에 강한 독일과 서비스 노하우를 갖춘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세계 각국은 일찍이 제조업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IoT가 제조업의 두뇌이자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에 초점을 맞춰 모든 공장을 단일 가상공장 환경으로 만들어 가동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부품 등의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는 21세기형 공장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멘스·보쉬·SAP·폭스바겐 등 대기업들이 참여하고 정부의 든든한 지원까지 가세하고 있다. 미국은 이에 맞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산업인터넷을 앞세워 IBM·인텔·AT&T 등이 참여한 제조업 육성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측은 유럽과 일본·인도의 기업과 단체 등 250여곳을 끌어들일 정도로 급속히 세를 넓히는 분위기다. GE가 브라질 올림픽에서 첨단 의료서비스를 앞세워 대회 운영을 책임지고 독일의 아디다스가 본국으로 유턴하는 등 제조업 혁신노력은 벌써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우리도 ‘제조업 혁신 3.0’을 내걸고 나름의 경쟁력 강화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글로벌 추세와 동떨어진 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1,000개의 스마트공장을 보급하는 데 이어 오는 2020년까지 1만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미래 제조업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단기 성과에만 매몰되는 바람에 마치 스마트공장이 제조업 혁신의 전부인 양 여겨지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들이 끌려가는 모양새다 보니 기껏해야 계기판 몇 개를 바꾸는 식의 과거 1990년대 공장자동화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마저 현장에서 들려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소프트웨어나 인적 능력, 기업 간 협업이라는 것도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스위스의 UBS가 4차 산업혁명의 국가별 적응능력을 평가하면서 한국이 기술 수준이나 사회간접자본(SOC) 등 하드웨어는 강한 반면 경제구조가 유연하지 못하다며 박한 점수를 매긴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 대기업들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새로운 융합기술을 이끌어내는 모습이 부러울 따름이다. 독일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노조까지 끌어들여 제조업 혁신의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고 구체적인 실행력을 담보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일이다.

선진국들은 지금 공장과 공장을 첨단 정보통신기술(ICT)로 연결하는 제조업의 혁명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제조업 강국을 자처하면서도 시대 흐름에 뒤처진 채 길을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하고 수출의 80%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분야일 수밖에 없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춘 신시장 창출로 혁신적 변화를 주도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계 전체를 아우르는 제조업 발전전략을 마련하고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어설프게 대응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가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더 늦기 전에 21세기형 제조업의 미래를 모두가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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