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14일 한화케미칼이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과거 지급했던 이행보증금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양측이 맺은 양해각서(MOU)에서 이행보증금 몰취 조항을 둔 목적이 ‘최종계약 체결’이라는 채무 이행을 확보하려는 데 있었다 하더라도 3,150억여원에 이르는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하는 것은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1·2심과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은 한화 측이 낸 이행보증금의 성격을 단순히 위약벌금이라고 본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행보증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것”이라며 “양해각서에 ‘이행보증금과 이자는 위약벌로 산업은행에 귀속된다’고 규정했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적시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는 산업은행 측의 손해를 따져 한화 측이 돌려받게 될 구체적인 액수를 가릴 예정이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 “산업은행 등이 입은 손해는 최종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믿었던 것에 의해 입었던 손해, 즉 신뢰이익 상당 손해에 한정된다”며 손해의 범위를 제한했다.
한화 측의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아님에도 대법원이 이행보증금 전액 몰수가 부당하다고 봄에 따라 앞으로 기업 M&A가 중도 무산돼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이 불거질 경우 정교한 반환금 산정이 주요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화는 2008년 10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산업은행 등에 3,150억원을 이행보증금으로 냈다. 이후 한화 측이 글로벌 금융위기 등 상황 급변과 대우조선 노조의 저지로 실사하지 못하면서 2009년 6월 계약해지를 통보하자 산업은행은 이행보증금을 거두어갔다.
한편 한화 측의 인수 무산 뒤 대우조선에는 수조원 대의 회계부정이 발생했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이와 관련 2012~2014년 대우조선에 5조7,000억원 규모의 회계사기를 확인하고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 김모씨를 구속기소 했다. /김흥록·진동영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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