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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키 큰 세 여자'-세 명의 한 여자가 풀어놓는 인생 이야기

한 인간의 20·50·90대가 함께 하는 대화·충돌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 곱씹어





“난 당신이 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거부해요.” 주름 늘고 등 굽은 몇십 년 뒤 내 모습에 누군들 이런 말 튀어나오지 않으랴. 약 한번 갈지 않아도 야속하게 내달리는 ‘세월’이란 시계 앞에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얄궂은 운명의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연극 ‘키 큰 세 여자’는 죽음의 문턱에 다가선 92세 노파 A와 그녀의 간병인 52세 중년 여성 B, 변호사 사무실 직원인 26세 C 등 20·50·90대 각기 다른 성격의 각기 다른 여성 세 명을 통해 A라는 한 여자의 인생, 그리고 살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인간의 삶을 덤덤하게 담아낸다.

‘캐릭터의 분화’는 평범한 인물의 평범한 인생을 ‘삶과 죽음’, ‘젊음과 노년’이라는 더 큰 주제로 확장한다. 1막에선 A가 풀어놓는 ‘옛이야기’를 중심으로 세 여자의 대화를 풀어간다. 대화는 이어지지만, 처한 상황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른 세 사람은 좀처럼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 A가 쓰러져 의식을 잃은 채로 시작하는 2막에는 A가 20·50·90대로 분리돼 등장해 서로의, 아니 자신의 미래와 과거를 듣고 또 들려준다. 1막이 별개의 세 인물을 통해 나이를 먹으며 변한 A를 간접적으로 보여줬다면, 2막은 세 명의 A를 등장시켜 그녀의 삶을 여러 각도로 담아내는 셈이다. 비슷한 듯 다른 1, 2막을 통해 기억의 퍼즐이 짜 맞춰지며 한 인간의 인생이 비로소 완성된다.

전환이 거의 없는 무대는 배우들의 열연만으로도 아쉬울 것 없이 꽉 찬다. A역의 박정자는 괴팍한 노파와 삶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행복의 의미를 깨달은 ‘현인’의 모습을 오가며 이야기의 중심에 서고, B역의 손숙과 C역의 김수연도 1인 2역을 알차게 소화하며 또 다른 A를 그려냈다. 국립극단이 ‘배우 중심의 연극’을 표방하며 이 작품과 이 배우들을 첫 타자로 내세운 자신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마지막 순간이 온 거야. 그래, 거기… 그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야.”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순간, 박정자가 읊조리는 고독한 환희는 귓가에, 가슴에 오랫동안 맴돈다

미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가 양어머니의 오랜 세월에 걸친 불행을 바탕으로 쓴 희곡이다. 양어머니는 큰 키 때문에 ‘남들보다 강해져야 한다’는 압박과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올비가 희곡의 제목을 ‘키 큰 세 여자’로 지은 이유다. 10월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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