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6월8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참여정부 문화정책의 기본 틀로 ‘창의한국(creative korea)-21세기 새로운 문화의 비전’을 발표한다. 포부는 거창했다. 향후 10년 이상 지속될 대한민국 문화정책의 기초를 세우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문광부는 1년여의 연구와 전문가 토론을 거쳐 수백 쪽의 보고서도 만들었다. 어이없게도 이 장관은 곧바로 6월30일 교체됐다. 후임은 당시 국회의원(열린우리당)이던 정동채 장관이었다.
# 다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교체설이 나오고 있다. 현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후임도 역시 집권 여당의 정치인이다. 우연일까.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올해 7월4일 새로운 국가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를 발표했다. 한글로는 역시 ‘창의한국’으로 표현된다. 2002년 제시된 ‘다이내믹 코리아’를 계승한다고 하지만 정부가 국가브랜드에 대해 이렇게 대대적으로 띄우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가히 ‘창의한국의 저주’라고도 할 만하다. 영화계 출신인 이 전 장관이 만든 창의한국 비전은 지금도 우수성을 인정받는다. 임기가 1년4개월이었던 이 전 장관은 이 프로젝트에 거의 전 시간을 소비했다고 볼 수 있다. 비전은 당시 ‘창의성’을 화두로 문화와 예술·체육·관광 분야의 중요 의제들을 집대성한 문화정책의 설계도이자 지침서로 인식됐다. 학교 문화예술교육 강화 등의 세부 내용은 지금도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되고 있다.
그러나 창의한국 프로젝트는 초기 참여정부의 코드 논란 속에서 이 전 장관이 첫 공개 22일 만에 사퇴하면서 비전도 조용히 퇴장했다. 정부가 새로운 국가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발표했을 때 과거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게 새삼 화제가 됐을 정도다. 어떤 정책이라도 결국 사람이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디자인계 출신인 김 장관이 지난달 4일 공개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는 어떤 운명을 겪을 것인가. 국가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는 유난히 구설수에 많이 올랐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creative economy)’의 짝퉁이라는 것에서부터 국내외 브랜드 표절이라는 것까지 비난거리도 다양하다. 새 국가브랜드의 유통기한은 현 정부의 남은 임기인 1년 반이라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사람의 이미지가 경험 축적의 결과물이듯 국가 이미지도 오랜 시간과 각고의 노력을 통해 구축된다. 국가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의 중요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우리나라는 이미지가 모호하고 국가브랜드도 없다”고 평하기에 앞서 이를 만들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먼저다. 다음 정부는 또 무엇을 만들 것인가.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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