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5년 전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눈부신 모래가 펼쳐진 백사장, 1,000년의 애절한 사랑을 품은 할미·할아비 바위, 금빛에서 시작해 황홀한 석류 빛으로 대지를 적시는 해넘이, 어느 것 하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비경이었다. 해당화가 많이 피어 ‘꽃지’라고 한다지만 그보다는 꽃보다 아름다운 땅이라는 뜻이 맞지 않나 싶다. 하지만 요즘은 그곳에 가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해변에는 자갈이 가득하고 맛조개를 잡던 갯벌은 시커멓게 변해서다. 관광객 편의를 위해 만든 콘크리트 옹벽이 모래를 빼앗고 맛조개를 죽인 탓이다.
과거 독도는 바다사자 ‘강치’의 천국이었다. 수천 마리가 무리를 지어 섬을 빽빽하게 차지하고 있던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1950년대 전수조사를 했을 때 700마리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 강치를 지금은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다. 일제의 남획과 보신용 사냥으로 말 그대로 씨가 마른 탓이다. 이런 사례가 강치뿐일까. 인류가 등장한 것은 겨우 20만년 전이다. 지구 나이 46억년에 비하면 찰나의 시간이다. 하지만 인류가 출현한 후 생물은 이전보다 1,000~1만 배나 빨리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 중 75%가 60년 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인간이 ‘6차 대멸종’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충남 태안 안면도 ‘바람아래해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도마뱀 표범장지뱀이 2008년까지 650마리로 줄다가 최근 787마리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해안가 콘크리트 옹벽을 철거한 뒤 해안사구가 두터워지면서 생태계가 복원된 덕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도 이를 근거로 태안해안국립공원의 등급을 3단계나 높였다. 인간과 다른 생물들이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아 반갑다. 아무쪼록 백사장도 되살려 아들 손잡고 맛조개를 캐던 그 시절의 추억을 다시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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