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법조인만 알아듣는 판결문

일반인 10명 중 9명 "한번 읽고선 이해 못해"

'흠결되다' '불상의' '범의'등 난해한 용어 거리낌없이 사용

쉽게 쓰기 안내서 내놨지만 체계적 교육부재로 개선 미흡

'국민과 동떨어진 법원'이라는 지적의 주요 이유로 꼽히는 '난해한 판결문' 문제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0명 중 9명은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최근 일반인 72명을 대상으로 형사 판결문 샘플을 제시한 뒤 이해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번에 이해됐다'는 사람은 13.8%에 불과했다. 무려 86.2%가 한 번 읽고서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2~3번 정독해야 그럭저럭 내용이 이해됐다는 응답은 69.4%로 높아지기는 했지만 수차례 읽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도 16.6%나 됐다. 또 판결문에서 '피고인에 적용할 법령'과 '양형(형벌의 정도) 이유'를 적은 부분만 따로 떼서 "이해가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90% 이상이 모르겠다고 답했다.

반면 사법연수원생·로스쿨생 등 준법조인은 100% 이해한다고 답했다. 법조인들만 이해하는 판결문인 셈이다.

해결책에 대한 괴리도 컸다. 일반인은 "어려운 단어에 각주를 붙여서 설명하면 어떨까"라는 물음에 91.6%가 좋은 시도라고 답했지만 준법조인 95.2%는 판결문만 복잡해진다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번에 설문조사로 활용된 판결문 샘플을 읽어본 결과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문장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가령 '피고인이 상해의 결과를 인식하고 이를 용인하는 등의 미필적이나마 상해의 고의까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문장이 나왔다. 해당 판결은 피고인 A씨가 B씨의 얼굴을 때렸는데 그로 인해 B씨가 넘어져 무릎뼈가 부러진 사건이다. 위 문장은 'A씨가 무릎에 부상을 입히려는 의도가 있었거나 이를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샘플 판결문이 특별히 어려운 건 아니다. 다수의 판결문에는 흠결되다(일정한 수효에서 부족함이 생기다), 불상의(자세하지 않은), 범의(범죄 행위임을 알고서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 등 난해한 용어가 거리낌 없이 쓰이고 '~하였는바'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등의 표현으로 길게 늘어지는 문장이 많다.

법원도 쉽고 간결하게 판결문을 쓰자는 취지로 지난해 '형사판결서 작성 방식 적정화에 관한 예규'를 만들었고 '새로 쓰는 형사판결서'라는 설명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지만 법관들의 관심 부족, 체계적인 훈련 부재 등으로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수십년 동안 몸에 밴 관행을 단시간에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교육과 홍보를 강화하고 예규를 내실화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판결문을 내놓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