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 단지와 골목 사이로 어지럽게 모여 있는 낡은 주택들. 우리나라의 주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조적인 두 가지 풍경이다. 도시재생이 대규모 개발 사업 위주로 진행된 탓에 서울 및 수도권 등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는 기존 주택들을 허물고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선 반면, 그렇지 못한 곳은 주택들이 계속 낡아가고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을 가져온 기존 도시재생 방식을 벗어나 거주민과 지역의 특성에 맞춘 새로운 대안 모델을 찾기 위해 수목건축 부설연구소인 더나은도시디자인연구소와 서울경제 등이 공동주관한 ‘2016 더 나은 도시디자인포럼’이 8일 수원시청에서 열렸다. 한국과 일본의 도시디자인 전문가들이 참석한 이 세미나에서는 한국도 ‘지역 맞춤형 마을 만들기’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의 일환으로 일본의 ‘마을 만들기 조례’ 등이 소개됐다.
◇획일적인 주거형태와 개발 방식의 한계 =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주거형태가 너무나 단순하다고 입을 모았다. 양적 공급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아파트라는 천편일률적인 주택만 건설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개발 방식은 곧 한계에 부딪칠 것으로 보인다. 거주민 간의 소통이나 지역 고유의 특성을 배제한 채 사업이 진행돼 온 것이 그 한 예다.
대안으로 일본의 도시재생 사례가 소개됐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04년부터 ‘도시재생기구(UR:Urban Renaissance agency)’라는 독립행정법인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관동 지역에서 진행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주민이 주체가 돼 도시를 재생시킨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가나가와현의 어촌 마을 ‘마나즈루마치’와 사이타마현의 전통도시 ‘가와고에’ 등이 대표적이다.
◇‘마을 만들기 조례’ 등 주민 주체로 재생 = ‘마나즈루마치’는 인구 8,900명의 작은 어촌마을이다. 1980년대만 해도 무분별한 리조트·펜션 개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지금은 일본 내 최고의 디자인 실험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그 원동력은 지역주민과 지자체, 전문가 집단이 함께 완성한 ‘마을 만들기 조례’에 있다. 조례에 따라 이곳 주민들은 마당을 꾸미거나 돌담을 바꿀 때, 대문을 교체할 때에도 함께 정한 디자인 지침을 철저히 지킨다. 덕분에 이 지역은 알록달록한 모텔과 흔한 횟집 간판 하나 없는 소박함 속에서 지역만의 특색을 확보하며 도시재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또 다른 사례인 ‘가와고에’의 주말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전통 건축 양식인 ‘구라’와 전통 과자 거리를 보러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덕분이다. 이 도시도 한 때 그 특색을 잃어버릴 위기를 겪었다. 1970년대 불어닥친 개발 열풍 탓에 도시의 전통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다시 살려낸 것은 주민들이다. ‘구라를 살리는 모임’을 조직한 주민들이 주도해 거리의 간판이나 건물 외벽 색깔 등에 대한 지침을 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키면서 도시는 재생할 수 있었다.
◇도시재생의 새로운 대안 필수적 = 전문가들은 재건축·재개발이 아니라 삶과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도시재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개발시행자 중심이었던 도시재생 사업 방식을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 맞춤형 개발로 전환하는 동시에 규제와 사업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부도 이 같은 흐름을 도시재생에 반영하기 위해 ‘빈집 등 소규모 주택정비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서용식 수목건축 대표는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업으로는 기존 획일적인 도시재생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며 “지역의 특성에 걸 맞는 맞춤형 마을을 만드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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