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의 최대 이벤트로 관심을 모았던 TV토론은 끝까지 후보 간 추잡한 비방전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디서도 이제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대선 결과 승복 여부를 놓고 “그때 가서 말하겠다”며 불복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해 남은 선거전은 물론 대선 이후까지 파란을 예고했다.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간 막장 공방전 속에 어느 쪽도 ‘결정적 한방’을 날리지는 못했지만 클린턴이 TV토론에서 3연속 우세를 보였다는 평가를 얻어 승기 굳히기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클린턴과 트럼프는 19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에서 열린 대선후보 3차 TV토론에서 90분 내내 무차별 난타전을 벌였다. 형식적인 악수도 없이 토론을 시작한 두 후보는 초반 낙태 문제와 총기규제, 연방대법관 인선 등을 놓고 치열한 정책대결을 벌여 최악의 이전투구를 연출한 2차 토론과 다른 양상이 기대됐다. 클린턴은 낙태를 옹호한 반면 트럼프는 “끔찍한 일”이라며 반대했다. 총기 소유의 자유를 전적으로 트럼프가 지지한 데 비해 클린턴은 “규제도 필요하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또 미국의 동맹관계를 놓고 트럼프는 일본과 한국 등을 지목하며 방위비 부담 증대를 공언한 반면 클린턴은 “트럼프가 동맹을 찢어버리려 한다”고 반박했다. 양측은 경제와 이민정책을 놓고도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여 트럼프가 감세와 국경감시 강화를 주장한 데 비해 클린턴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계승을 선언하며 불법 체류자들의 선별적 구제라는 견해를 폈다.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율 추락을 몰고 온 음담패설 동영상 파일 문제가 거론되면서 순식간에 토론은 인신공격 무대로 변했다. 클린턴은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 파일이 전국적으로 전파를 탄 후 성추행 의혹이 봇물처럼 터진 것을 지적하며 “트럼프는 전혀 사과하지 않고 있는데 그가 누구인지는(폭로된) 발언들이 그대로 보여준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그러자 트럼프는 “나는 여성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사람”이라고 강변하며 성추행 의혹을 클린턴 선거캠프에서 사주했다고 ‘배후설’을 제기했다.
‘역대 최고의 비호감’으로 꼽히는 두 후보에게 진행자인 크리스 월러스 폭스뉴스 앵커가 요구한 대통령 자질에 대한 상호 평가에서도 비방전은 계속됐다. 클린턴은 “트럼프가 핵 버튼을 쥐고 핵 무장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며 “역사상 가장 위험한 대선후보”라고 직격탄을 날린 뒤 트럼프가 자신의 빌딩 신축에 중국산 철강을 사용하고도 근로자들의 표심을 얻으려 중국 등을 비판한 데 대해 ‘악어의 눈물’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는 클린턴의 최대 약점인 국무장관 재직시 개인 e메일 사용을 물고 늘어졌다. 그는 “힐러리는 범죄자인데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아주 끔찍한 여자”라고 막말을 총동원했다.
특히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승복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때 가서 말하겠다”며 대선 결과 불복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진행자가 거듭해 ‘대선이 끝나면 미국은 다시 하나가 돼야 하는데 여기에 반대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때 가서 말할 것”이라며 최근 그가 제기한 선거조작 의혹을 다시 언급했다.
CNN방송은 토론 직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클린턴을 승자로 선택한 반면 트럼프는 39%의 호응을 얻는 데 그쳤다며 TV토론전에서 클린턴이 3연속 우세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1차 토론에서 소극적 공세로 지지율이 27%에 불과했던 트럼프가 클린턴의 각종 스캔들을 물고 늘어지며 “잘했다”는 평가가 10% 포인트 이상 오른 반면 클린턴은 그만큼 하락해 20일 남은 미 대선에서 네거티브 선거전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정치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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